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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누리호, 발사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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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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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오는 21일 대한민국이 100% 순수 기술로 만든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첫 발사됩니다. 미국, 일본 등 '동맹'은 물론 어느 나라도 도와주지 않아 개발진들이 고전 서적과 박물관 골동품을 참고해가며 밤을 새워 작업한 피땀의 결과물들입니다. 소중한 열매이고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누리호 발사는 사실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핵심인 75t 액체엔진은 2018년 11월 이미 시험 발사에 성공했고,추진제 탱크나 페이로드 페어링 등 다른 우주 발사체 기술도 완성 단계입니다. 설사 1차 발사가 실패하더라도 그동안의 성과는 고스란히 이어지며 보완해서 또 도전하면 됩니다. 100개의 계단 중 99개를 올랐고, 마지막 1개를 오르려다 발을 헛디뎠다고 전체를 실패했다고 보면 안 되는 것이죠.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누리호는 반쪽짜리?

현 시점에서 누리호는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즉 미국에 의해 우주발사체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은 1987년 G7국가들을 중심으로 핵 비확산을 명분으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을 출범시켜 탑재중량 500kg 이상, 사정거리 300km이상의 미사일에 대해 기술 및 부품 등의 수출입을 통제합니다. 회원국간 거래는 가능하지만 회원국-비회원국간 거래는 금지됩니다. 한국은 2001년 회원국으로 추가 가입했는데, 나로호 개발을 위해 러시아의 로켓엔진을 수입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에 대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비확산 정책의 연장선에서 한국의 우주발사체로 발사되는 경우 미국의 인공위성 부품도 수출을 불허하는 수출통제정책(ITAR)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예외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브라질 등 제3국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MTCR 체제 출범 이전에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일본과 프랑스 등 8개국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 줍니다.

즉 한국이 우주발사체를 독자개발하더라도 미국산 고성능 부품이 들어가 있는 타국의 위성 발사를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명분은 핵 비확산이지만, 현재로선 위성 발사 서비스 시장에 장벽을 두게 된 꼴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차기 한국형 발사체'를 이용해 2030년까지 달 착륙탐사선을 보내겠다고 공언했지만, 미국이 부품을 내주지 않으면 달 착륙탐사선 개발이 요원해집니다.

이에 대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최근 배포한 '항공우주산업기술동향'에서 "(누리호 발사가)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고성능 부품이 포함된 위성이나, 외국의 위성을 발사 서비스 하는데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신생아' 누리호

두 번째, 누리호의 '앞날'입니다. 누리호는 우주 발사체 시장에서 보면 성능ㆍ신뢰도 면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생아 수준입니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죠. 바야흐로 세계 우주 시장은 지금 스페이스X 등 민간 우주 업체들이 뛰어 들면서 격변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초소형 군집 위성 시스템, 위성 인터넷ㆍ6G 초고속 통신망 등 위성이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이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스페이스X 등 민간업체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고성능ㆍ고효율ㆍ친환경 우주발사체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회 발사 비용이 곧 2000만달러 대로 떨어질 겁니다. 또 미 항공우주국(NASA)나 유럽항공청, 중국, 일본 등은 화성 개발 등에 대비하기 위해 심우주 탐사용 초대형 로켓을 개발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도 떨어지는 데다 국제 우주발사체 시장 진입 장벽에 막힌 누리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놔두면 기술 자체가 사장될 것이 뻔합니다. 물론 정부가 6000여억원을 들여 신뢰도 향상을 위한 4차례의 추가 발사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1조5000억원대를 투자한 차기 발사체 사업을 계획 중이기도 합니다(그나마 올해 6월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보류됐죠). 일각에선 '퀀텀 점프'를 얘기하면서 ▲재활용 가능 ▲친환경연료 사용 ▲고효율의 다단연소시스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활용 최첨단 제어 기술 채택 등 '대담한 도전'을 주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리호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발하는 데 들어간 시간이 10여년이고 재정도 2조원에 달합니다. 앞으로 타국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진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10~20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놀고 있을까요? 훨씬 더 성능이 개선될 겁니다. 현재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국의 민간 위성 제작업체들조차 한국의 우주 발사체를 외면하게 돼 누리호는 '창고'에 박혀 있는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것은 "누리호가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우주 개발 사업의 장기적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하고 거기에 맞게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미국의 우주발사체 진입 장벽을 빨리 없애야겠죠. 누리호 및 차기 발사체 개발과 상용화, 활용, 민간 기술 이전 등과 관련한 스케줄도 촘촘하게 짜야 합니다. 오는 21일 누리호의 첫 발사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러나 성공 발사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우리 모두가 명심했으면 합니다. 이번 누리호의 첫 발사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에게 우주 개발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우주발사체는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지는 지 다시 한 번 재점검하고 재설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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