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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향해 "백담사 가지 말길"···조영남 입방정이 부른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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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4〉1991년 청와대 오찬 때 입방정



중앙일보

1991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을 신축했다. 100여명의 각계각층 인사를 초청한 신축 축하 오찬 자리에서 조영남씨는 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반주없이 노래를 불렀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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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소인 조영남한테는 써야 하는 배가 아직 12척이 남아있사옵니다(필자는 중앙SUNDAY 독자를 전하로 추종해왔다. 12월 말까지 써야 하는 원고 분량을 이순신 장군에게 남은 12척의 배의 숫자인 12주에 비유했다. 실제로는 이번을 포함해 10번 남았다).”

“그럼 열두 척이면 해볼 만 하지 않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가 가진 배로는 도저히 왜놈들이 보유한 300여 척의 함대에 대적할 수 없사옵나이다.”

“배가 12척이 남았는데 조 장군은 지금 무엇이 문제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의 배는 전부 너덜너덜 낡았을 뿐 아니라 물도 배 안으로 새들어와 물 퍼내기도 힘이 달릴 지경이옵니다.”

“그럼 왜놈들이 우리 진해 앞바다까지 몰려오고 있다는데 비상 각료회의라도 열어야 한단 말이오?”

“전하 그럴 시간조차 없사옵니다.”

“그러면 먼저 조 장군의 대비책을 말해보시오.”

“전하! 소인은 전하를 위해 죽기 살기로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하였사옵니다. 하오나 전하! 방법을 아뢰기 전에 긴한 청탁이 한가지 있사옵니다.”

‘사의 찬미’ 윤심덕, 나와 입장 비슷

“무슨 청탁이오.”

“다름이 아니오라 저에게 전권을 부여해 어디서든 태클이 못 들어오게 막아주실 것을 청원드리옵니다.”

“알겠소. 그건 염려 마시오. 그런데 짐은 조 장군의 전술이 궁금하오.”

“전하 저는 10여 년 전 북경에서 조영남 초청 전시를 개최한 바 있사온데 그때 소인은 진시황의 패러디로 ‘여친용갱(여자 무사들)’을 조직 제작한 바가 있사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소인은 남자 대신 여자들로 병사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사옵니다.”

“아 거참 참신한 생각이오. 짐은 조 장군이 부럽소. 평소에도 늘 그런 점을 많이 부러워했소. 그럼 조 장군이 염두에 둔 여자 병사의 명단은 어찌 되는 것이오?”

“전하! 단도직입적으로 아뢰겠사옵니다. 첫째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유럽 쪽 민요에 우리말 가사를 얹은 ‘사의 찬미’의 주인공 윤심덕(1897~1926) 선배에게 총사령관의 중책을 맡기겠나이다. 그 이유는 정통 클라식을 공부하고 대중음악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소인의 입장과 처지가 비슷하고 특히 윤 선배가 29살 나이에 동경 유학 시절 연극반에서 만난 문학청년 유부남과 순수 연애 스캔들로 둘이 함께 현해탄 물결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높이 사, 이번 전쟁에서도 그녀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리라 믿어 막중한 총사령관직을 내리게 됐사옵니다. 게다가 윤심덕 선배는 3명 되는 소인 소속 아이들의 모친 되는 분과 성씨가 똑같다는 점도 고려되었음을 사전에 알려두는 바입니다.”

“오호! 과연 그것은 조조와 조자룡을 능가하는 신비의 책략이오! 하하, 그런데 조조 조자룡 조 장군 전부 조씨 판이구려. 다음에 등장하는 여자 병사가 기대되오.”

중앙일보

송민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음의 병사는 제가 가수 되기 훨씬 전부터 흠모해온 ‘나 하나의 사랑’의 주인공 송민도 선배이시옵니다. 물론 소인은 윤심덕 선배도 뵌 적이 없고 또한 송민도 선배도 만나 뵌 적이 없사옵니다. 송민도 선배는 방송으로만 들었는데 그 목소리가 세계적인 마할리아 잭슨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저음의 목소리를 소유하였사옵니다. 소인은 처음 송민도 선배의 히트곡 ‘나 하나의 사랑’을 듣고 그 후로는 그 노래의 가사와 곡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오늘날까지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있사옵니다. 그런데 전하! 변고가 생겼사옵니다!”

“무슨 변고가 생겼단 말이오?”

“예. 전하 이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 ‘나 하나의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불쑥 튀어나와 소인이 주체를 못 하게 되었음을 송구한 맘으로 알려드리옵나이다. 전하께서 윤허하시든 말든 이 에피소드를 소인은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때는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에 청와대 본관을 신축한 적이 있사온데, 소인은 그때 직능 대표 자격으로 이주일 강부자 선배님 등과 대통령이 특별 초대하는 본관 신축 기념 점심 오찬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사옵니다. 소인은 총체적으로 굉장히 싱거웠던 행사로 기억되옵니다.

이때 소인은 대통령 초대 점심 자리가 너무 지루해 속으로 불만이 엄청 컸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등장하시기 전까지는 그저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배식이 시작되었음에도(곰탕 한 그릇이 주메뉴였던 것으로 기억됨) 주빈이신 대통령 내외가 등장할 때까진 그 누구도 곰탕 그릇 뚜껑을 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 대통령 내외가 박수를 받으며 등장, 착석하신 뒤 식사를 시작하자 모두의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곰탕 국물이 식어 사상 최고로 맛없는 곰탕으로 소인의 기억에 남아 있사옵니다.

중앙일보

윤심덕


식사가 끝나고 이어서 대통령님의 그 날 각계각층 손님에 대한 인사말이 이어졌는데 매우 형식적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메모지 한장을 무릎쯤에 올려놓고 힐끗힐끗 내려다보면서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근황을 간단하게 묻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에! 이주일 선생은 OB 그랜드쇼에 고정출연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 출연했습니다.’ ‘그럼 계속 저희들을 웃겨주십시오’.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어서 서너 차례의 인사가 끝나고 갑자기 또 침묵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메모 명단이 너무 일찍 동났기 때문이었습죠. 다시 또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직속 비서관이 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조 선생이 일어나서 분위기 좀 살리시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하! 저는 비서관의 부추김에 그만 벌떡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그때는 소인이 한참 젊을 때였죠. 이럴 땐 대통령을 대화 상대로 삼는 것은 진부하다고 판단해서 옆에 계신 영부인을 공략하는 게 폼이 날거라 생각했습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영부인님은 소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대통령님! 저는 가수 조영남입니다. 그리고 영부인님 너무너무 아름다우십니다’ 이렇게 저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영부인님. 신문이나 TV에서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돼서 무한 영광입니다. 영부인님께서 저한테 아무 말씀이나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하니까 김옥숙 여사님께선 뜻밖의 반응으로 너무나 수줍어 웃음만 지으시며 한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소인의 야심 찬 작업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사옵니다. 저는 급 당황!! 그래서 이번엔 대통령께 초대에 감사하는 마음과 대통령직을 무사히 잘 수행하시는 것을 축하하는 말로 주제를 잽싸게 바꿔 나갔습니다.

‘대통령님! 퇴임 후에는 전임 대통령으로 편히 살아가시며 산책길에 동네 아이들 과자 사 먹으라고 용돈이나 건네주시며 그냥 보통 아저씨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전하 믿어주십시오. 여기까지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중앙SUNDAY 독자 제위 전하!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제발 백담사 같은 델 가시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아! 소인의 고질병 입방정이 또 터진 것이었습니다. 와! 백담사 얘기에서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는 걸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임 전두환 대통령 내외께서 백담사로 갔다 온 뉴스가 아직까지 엄청 요란 법석이었기 때문입니다. 믿기시지 않겠지만 저는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CD 음악 작품 제작에 일정 부분 관여한 적이 있어서 현직 노 대통령님과는 비교적 가깝게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노래 ‘베사메무쵸’나 특히 휘파람 솜씨는 가히 프로급이셨습니다. 그걸 기념 음반으로 제작하셨던 겁니다. 그 순간 노 대통령님은 사태를 제대로 조절해주셨습니다. ‘조 선생, 일어선 김에 노래나 한자리 하시는 게 어때요?’

전하! 상대는 대통령님이십니다. 이 나라의 국왕 내외이십니다. 소인이 어찌 ‘이런 분위기에서는 노래가 불가능합니다. 반주도 없이 어떻게 노래를 한단 말입니까’ 이따위 핑계를 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저는 얼른 백담사의 큰 실수를 만회할 절호의 찬스다라고 생각하며 일어선 자세 그대로 노래를 한 곡조 부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따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꼭 노래를 불러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부르는 소위 십팔번인 노래가 바로 송민도 선배님의 ‘나 하나의 사랑’입니다. 저는 현직 대통령 내외분과 국내 각계각층의 대표 100분 앞에서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호온자아만이이 그대르을 아알고 싶~소 나 호혼자아만이이 그 대르을 갖고 싶소!’

노태우 대통령 음반 제작에도 참여

아뢰기 황공하오나 음악이라는 게 참 오묘합니다. 이런 형식적인 자리에서 흔한 노래 밴드 반주도 없이 무반주로 노래한다는 건 무모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법인데 왠지 그날은 완전 달랐습니다. 대통령 내외 앞이라서 그랬는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소인 노래는 그날따라 필요 이상으로 우아하고 멋지게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후렴 부분의 ‘나아아 호오온자만이이 그대를 사랑하아여 영원히 여엉원히이’ 이 부분은 너무나 청아하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제 맘 속에 ‘이건 아니다’ 내가 영부인한테 꼭 무슨 프로포즈하는 모양새가 되어간다는 걸 감지하게 되었는데 이 감정을 스톱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에라 모르겠다, ‘행보옥카게 살고오시입소오오’ 하며 한껏 멋지게 끝을 냈사옵니다. 요란한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으면서도 소인은 이미 알았죠. ‘나는 또 죽었구나.’ 아! 실로 왕의 남자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서는데 저는 넋을 놓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잡혀갈 일만 남았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하, 그때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소위 군부 시절이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아! 왜 백담사 얘길 꺼내 가지고. 전하! 그런데 상황은 금세 반전되어갔습니다. 영부인이신 김옥숙 여사께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환하게 웃으시며 강부자 여사를 대동하고 소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벌떡 일어섰죠. 그토록 수줍어하시던 아름다운 자태의 영부인께선 친히 소인의 양손을 부여잡으시며 ‘어머 조 선생님은 늘 그렇게 재미있으셔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나는 휴! 죽었다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P. S. 전하 다음번에는 남아 있는 낡은 열두 척 배를 정성껏 수리해서 출정하겠사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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