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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시평] 법조인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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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법대 위에서 재판할 때 당사자 중 한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는 사건을 많이 접하였다. 이때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판가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솔로몬처럼 아기를 반으로 자르라고 명령할 수도 없었고,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할 수도 없었다. 그때마다 변호사들은 진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또 변호사는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4조). 공공성이 없는 법률전문가는 변호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법대에서 내려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보니 과연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가인지 의심스러운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변호사 수가 크게 늘고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승소를 위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변호사도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변호사의 거짓말을 막기 위해 엄격한 윤리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오래전에 원고의 소장에 대해 '전부 부인한다'고 답변한 변호사를 징계하였다. 원고의 소장 중에는 객관적으로 명백히 진실인 부분이 있는데도 이런 부분까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유였다. 이후 미국에서 '전부 부인한다'는 답변서는 사라졌다. 미국 변호사들은 이처럼 엄격한 윤리규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변론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리처드 기어가 변호사로 출연한 '프라이멀 피어'라는 영화가 있다. 그는 대주교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용의자(에드워드 노턴)의 변호를 맡게 된다. 변호인은 용의자를 만났을 때 대주교를 죽였는지 묻지 않는다. 대주교가 살해당했을 때 현장에 있었는지, 그때 다른 사람을 보았는지 주변 사실만 묻는다. 변호사가 용의자로부터 자신이 대주교를 죽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용의자가 대주교를 죽이지 않았다는 변론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핵심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변호사들의 윤리규정 위반에 따른 제재를 피하기 위한 노력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반영될 만큼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방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일단 부인한다고 답변하는 일이 흔하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짓 주장을 했다고 제재를 받은 일을 본 적도 없다. 진실을 밝혀 이길 수 없는 사건이라면 거짓 주장을 해서라도 이기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로 대접받는 게 현실이다. 작년에 우리나라 사법부 신뢰도가 OECD 회원국 중 꼴찌라는 보도가 있었다. 법정에서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실도 사법부 신뢰도 저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공공성 없는 법률전문가가 변호사로 활동하면 사법의 적정한 운영이 훼손된다. 이런 법조인이 판사나 검사로 국가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사법의 존립 근거가 위협받게 되고,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 국가 운영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훌륭한 법조인들이 입법, 사법, 행정의 영역에 많은 업적을 남겨 일부 자격 없는 법조인의 흠을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공익을 저버리고 사익만 추구하는 변호사가 늘어나면 국가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최근 악취 풍기는 부정부패 사건에 법조인들이 주연이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일이 늘고 있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로 나서는 법조인들의 언행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법조인은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세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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