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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조선·정유업계 역대급 호황인데 드릴십은 계약 파기…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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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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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소난골 드릴십/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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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주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2008년 조선업 슈퍼 사이클에 버금가는 실적을 올리고 있는 조선 3사에게도 골칫거리가 있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며 실적이 부진하던 해양플랜트조차 팔리기 시작했지만, 드릴십(심해용 원유시추선)만큼은 요지부동이다. 미인도 드릴십을 헐값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그마저 파기된 상황도 발생했다.

2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노르웨이 해양시추업체 노던드릴링이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드릴십'웨스트 리브라호'의 매매계약이 최근 취소됐다. 지난 8월에 이어 두 번째 드릴십 매매계약 취소다.

노던드릴링은 대우조선해양과 드릴십 '웨스트 아퀼라호'의 매매계약도 체결했지만, 지난 8월에 대우조선해양의 납품지연을 이유로 취소했다. 노던드릴링은 2018년 5월 대우조선해양과 드릴십 2기를 각각 2억96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체결 당시 각각 선수금 9000만 달러를 지불한 상태다. 노던드릴링은 대우조선해양에 선수금을 돌려받고 이자와 손해배상도 청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격이 일반 선박의 수배에 달하는 드릴십은 조선시황이 악화된 2008년 이후 국내 조선사들의 구원투수였다. 한때는 1기 당 가격이 6억 달러를 넘기도 했지만, 저유가 여파로 2014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규 발주가 전무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2013년 수주했던 드릴십은 유가 하락으로 계약이 파기되면서 '악성 재고'로 남게 됐다.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냈던 가장 큰 이유도 드릴십 재고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6월 이탈리아 전문 시추 선사인 사이펨(Saipem)과 드릴십 1기에 대한 용선(선박을 빌려주는 것)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4기는 재고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이번에 노던드릴링과 계약이 파기 되면서 4기를 재고로 두게 됐다. 현대중공업그룹만 업황 둔화 초기에 수주 취소된 시추설비를 전량 매각해 재고가 없는 상태다.

반면, 드릴십과 마찬가지로 2014년 이후 조선업계의 '골칫덩이'였던 해양플랜트는 국제 유가가 오르자 발주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유가가 80달러를 돌파하며 201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드릴십 업황은 당분간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조선업계의 관측이다.

드릴십을 재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신규 발주를 막는 요인 중 하나다. 해양생산설비는 일반적으로 유전의 생산 주기 내내 사용하지만, 드릴십은 신규 유전의 탐사와 개발이 완료된 후에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같은 해양생산설비는 발주가 나오지만, 드릴십은 이미 과잉공급됐다"며 "전 세계 드릴십 가동률은 7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국제 유가 상승 흐름이 지속될지도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양 선임연구원은 "드릴링에 투자를 해야 드릴십 수요가 생기는데 해양석유업자들과 주요 석유기업들은 고유가 시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현재는 OPEC+(세계석유수출기구플러스)가 석유 수요 회복에 비해 증설을 더디게 하고 있어 유가가 일시적으로 높게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FPSO 등 생산설비는 이미 발굴한 유전에 투입하면 되지만, 드릴십은 새로 유전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또 2014년 이후 유가 변동성이 커졌는데 유가 변동성이 높을수록 유전 개발을 통한 수익 예측이 쉽지 않고 투자 위험도 커진다. 신규 유전 개발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는 이유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신규 유전 개발 투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환경 규제 강화 가능성도 신규 유전 개발 투자에 영향을 준다"며 "에너지 가격 강세에도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가 과거 대비 소극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드릴십에 대한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미인도 드릴십 4기 모두 (용선·매각 등을) 협상 중"이라며 "유가가 오르고 있어서 드릴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도 미인도 드릴십 4기 중 2기는 2023년 영국 시추선사인 발라리스(Valaris)에 인도하기로 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발라리스로부터 이미 60~70%의 대금을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드릴십 2기에 대한 계약은 취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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