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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디지털프리즘] ○△□ 넷플릭스 게임에 참가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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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연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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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스틸샷 출처=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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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참가를 원하십니까." 456명이 의문의 초대장을 받고 서바이벌게임에 스스로 참가한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참가자들은 탈락하면 참혹한 죽임을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게임을 강행한다. 절망적인 바깥세상보다 모두에게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죽음의 게임'을 차라리 선택한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얘기다.

디스토피아적 우울한 지구촌 현실을 콕 집어낸 듯하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흥미진진한 반전요소, 독특한 화면구도, 미묘한 색감들의 향연에 이런 시대 공감까지 더해지면서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인을 홀렸다. 지난달 중순 공개 이후 4주간 전세계에서 1억4000만명 이상이 이 드라마를 봤다. 외국인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달고나' '오징어게임' 등 우리 골목놀이 문화에 빠지고 한국어학당으로 몰려든다는 소식을 듣다 보면 어깨가 절로 들썩여진다. K콘텐츠의 위상이 이 정도일 줄이야.

# 그런데 영 찜찜하다. K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그로 인한 흥행수익은 전적으로 넷플릭스 몫이기 때문이다. 올 3분기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 수만 438만명. '오징어게임'이 흥행한 덕분에 월가의 예상치를 넘어서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4분기엔 850만명이 추가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게다가 판권, 지식재산, 부가수익 권리 모두 넷플릭스가 가졌다.

넷플릭스가 자체 추산한 '오징어게임'의 가치는 약 1조원(8억9110만달러). 반면 넷플릭스가 이 드라마에 투입한 제작비는 총 253억원, 회당 28억원이다. 디즈니 마블시리즈 '펠컨'과 넷플릭스 인기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회당 제작비가 각각 295억원, 95억원임을 고려하면 '껌값' 수준이다. 이를 보면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게임판의 체스 말에 불과하다. 제작비를 낮추는 동시에 새로운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절충수'로 집어든 K드라마가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물론 제작단가가 너무 오르거나 시청자들이 식상해하면 언제든지 다른 말로 교체될 수 있다.

# 넷플릭스가 설계한 게임판은 꽤 정교하다. 투자콘텐츠 가운데 일부만 꾸준히 대박을 내도 손실이 나지 않는다. 콘텐츠별로 관람료가 아닌 이용자로부터 매달 일정액의 구독료를 받는 OTT(스트리밍서비스) 구조가 그렇다. 시스템 뒷단엔 모든 콘텐츠·시청데이터를 낱낱이 분석해 통계적으로 흥행 성공률을 높이는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제작비 외에 판권·지식재산·부가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수익배분 구조도 게임판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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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스틸컷. 출처=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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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값' '하청' 논란에도 국내 제작자들이 너도나도 넷플릭스 게임판에 스스로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오징어게임'이 증명했듯이 넷플릭스 플랫폼은 단번에 세계적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넷플릭스가 제시하는 제작비 규모가 할리우드 단가보다 적을지 몰라도 국내 방송사나 배급·투자사보단 낫다. 드라마 흐름을 깰 정도로 PPL(간접광고)을 덕지덕지 붙이지 않아도 된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싶거나 모험 대신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길 원하는 제작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파고든 것이다.

넷플릭스는 영상미디어 소비패턴마저 바꿔놓았다. 단편영화 대작보단 시리즈물에 익숙한 시청자가 부쩍 늘었다. 다음 회차로 시청자들을 유인해야 하는 시리즈물의 특성 때문일까. 잔혹하거나 자극적인 연출이 일반화됐다. 제작자도, 시청자도 자발적 선택으로 넷플릭스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예속된다. 구독플랫폼에 소비자들을 빼앗긴 경쟁미디어들이 너도나도 OTT판에 뛰어든다. 그럴수록 넷플릭스의 지배력은 커져만 간다.

이 모든 게 넷플릭스가 애초 그렇게 설계해놓은 게임판이다. K드라마의 성공을 즐기고 있을 넷플릭스를 보며 게임 참가자들의 사투를 감상하며 베팅하는 드라마 속 VIP(투자자)들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성연광 에디터 sain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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