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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필동정담] 디지털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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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 과학자인 존 캐스티는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극단적인 사건을 'X이벤트'라고 명명했다. 그가 꼽은 11가지 X이벤트에는 정전, 핵폭발 등과 더불어 인터넷 오류로 인한 '디지털 암흑'이 포함돼 있다. 인터넷과 전력망, 금융, 교통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에서는 고리가 하나만 끊어져도 체제가 연쇄적으로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대통령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지자 정부가 모든 인터넷을 끊어버린 일이 있었다. 독재정권은 인터넷 차단이 민주화운동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5일 발생한 KT의 네트워크 장애로 우리는 '디지털 암흑'이라는 X이벤트의 파괴력을 절감했다. 인터넷 정지가 장시간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이 복구되기까지 85분간 일상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와 배달 주문이 안돼 식당과 카페는 아수라장이 됐다. 증권 거래, 병원 의료 시스템 마비로 인한 피해도 속출했다. 원격수업이 먹통이 됐을 뿐 아니라 급기야 온라인 대국으로 진행됐던 세계바둑대회까지 중단됐다.

3년 전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때도 일상이 순식간에 '석기시대급'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했지만 이번에는 충격이 더 컸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환경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인류는 편리성을 위해 인간과 사물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초연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 통신 재난은 초연결사회에 잠복해 있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모든 인프라스트럭처가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망이 생각만큼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KT는 처음에는 외부 공격이라더니 이후 네트워크 설정 오류라며 우왕좌왕했다. KT는 피해 보상뿐 아니라 인터넷 망의 붕괴를 막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상 가장 편리한 사회가 재난에 가장 취약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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