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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변증법 책 썼더니 하루 아침에 '운동권 대부'로"...41년간 '목요철학'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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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인물] 백승균 계명-목요철학원장
28일 대구 범어도서관서 800회 포럼 개최
1980년 10월부터 41년간 중단없는 '철학논쟁'
김지하 마광수 방시혁 하버마스도 목철서 강연
"목철은 내일을 위한 사람됨의 강좌"
"50년 넘는 목철 위해 쉬지 않을 터"
한국일보

백승균 계명-목요철학원장이 26일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800회를 맞는 목요철학인문포럼의 역사와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백 원장은 1980년 10월부터 41년간 목철을 이끌고 있는 산증인이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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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0월부터 41년간 방학을 제외하곤 한 번도 빠짐없이 매주 1회 대구를 달궈온 철학논쟁이 28일로 800회를 맞는다. 캠퍼스 내 '목요철학세미나'로 시작해 시민사회로 터를 넓히면서 '목요철학인문포럼'으로 간판을 바꾼 속칭 '목철'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외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세미나를 다녀간 인사로는 김지하 시인과 마광수 교수도 있고, BTS를 탄생시킨 방시혁 PD,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40대 중반에 목철을 태동시킨 철학자가 80대 중반인 지금도 현역으로 목철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철학회이사장인 백승균(85) 계명-목요철학원장은 "50년 넘는 철학세미나를 대구에서 보고 싶다"고 말한다. 26일 포럼 장소인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백 원장을 만났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이 800회를 맞는다. 철학을 테마로 41년간 매주 주제발표와 토론을 이어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은 1980년 미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유학한 한국철학계 2세대가 계명대에 몰려들면서 탄생했다. 같은해 10월8일 변규용, 김영진 교수와 의기투합해 '에로스와 아가페'를 주제로 '목요철학세미나'를 시작했다. 교수가 말하면 학생은 받아 쓰는 것이 강의실 풍경이던 시절에 매주 목요일 1시간 주제발표와 1시간 토론은 신선했다. 그후 대학과 사회, 학문의 경계마저 사라진 포스트모던시대가 되면서 목철은 굳이 캠퍼스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2011년 2월 대학은 '계명-목요철학원'을 출범시켰고, '목요철학인문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대구도심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시민을 만나고 있다."

-신군부가 집권하고 민주화요구가 거센 1980년에 출범했다.

"출범 당시 세미나의 방향을 정치경제 대신 인문사회로 정했다. 대학에서는 민주화 바람 못지않게 지적 욕구가 넘쳤지만 이를 충족시켜줄 주체나 공간도 없었다. 교수들도 비판과 토론에 익숙하지 않아 금기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목철을 할때면 대명동 캠퍼스 시절 본관 시청각실의 좌석 500개가 빼곡히 차고, 복도까지 줄이 이어졌다. 인문철학은 시민의식을 바꾼다는 점에서 운동권 학생들에게도 관심대상이었다."

-순수학문을 했지만 '운동권 대부'로도 불렸다는데.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간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실존주의 철학 등을 공부한 후 귀국해 1982년 '변증법적 비판이론'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했는데, 변증법이 한창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시기라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면서 본의 아니게 '운동권 대부'가 됐다."
한국일보

고려대 안영옥(서어서문) 교수가 지난 14일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황금시대 최곡의 시인 : 루이스 데 공고라'라는 주제로 제798회 목요철학인문포럼 강연을 하고 있다. 계명-목요철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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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서 기억에 남는 발표자는.

"사상 전환기의 김지하 시인과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 연세대 교수, BTS 탄생 전 방시혁 PD, 유시민 작가, 고려대 윤사순 명예교수, 서울대 박이문, 김형효, 장회익 교수가 기억난다. 해외학자로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위르겐 하버마스, 칼 오토아펠, 비토리오 외슬레가 포럼을 다녀갔다. 독일에서 하버마스 교수로부터 배운 인연이 컸다."

-포럼 주제 선정이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다.

"학기마다 커리큘럼을 짜듯이 주제를 선정했다. 교수들이 한 해에 2번 학기초에 모여 일정과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를 정했다. 철학과 사상의 뿌리는 신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각 나라 신화부터 문학, 역사, 예술, 종교를 모두 섭렵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정치 경제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K-Pop이나 오징어게임만 보더라도 문화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28일 열리는 800회 세미나의 주제는 무엇인가.

"'인간의 시대에 탈인간의 시대를 상상하다'를 주제로 인공지능(AI) 시대에 인문학의 본질, 동물권과 생명정치, 인간과 기계의 탈경계와 휴머니즘 등 다양한 테마를 다룬다. 이 시대 인간들이 고민하고, 고민해야 하는 주제다."
한국일보

신일희 계명대 총장이 지난 3월18일 제781회 목요철학인문포럼에서 '천로역정의 비단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계명-목요철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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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오래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이 시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변화 속도가 급격한데 비해 인문학은 하루 아침에 배를 채우는 학문은 아니다. 하지만 인문학이 누적되면 미래사회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기초가 된다. 세상이 탈바꿈한다해도 인간 존재가 기술이나 기계일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사람됨'과 '자유함'이다. 이를 깨달으면 자유롭게 된다. 즉 각(覺)하면 탈(脫)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철학이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은 내일을 위한 사람됨의 강좌다."

-일상에서는 어떻게 철학을 생활화하고 있나.

"겸손하게 살고 있다. 학생이나 자식들에게도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면서 사람됨을 추구하도록 돕고 있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의 미래가 궁금하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인문학도 '사람의 학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50년이 넘으면 인력으로 없애기 쉽지 않다. 목철이 1,000회를 넘길 때까지 쉬지 않겠다. 시민과 사회의 관심과 애정을 바란다."

●약력

△계성고 졸업 △독일 튀빙겐대 역사철학 박사 △계명대 철학과 교수 △계명대 교학부총장 △계명대 철학과 석좌교수 △대한철학회 이사장 △계명-목요철학원장

대담= 전준호 대구취재본부장 jhjun@hankookilbo.com 정리=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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