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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목숨 건 영국행…보트 타고 해협 건너던 난민 27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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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브렉시트 후 출입국 강화에
불법 밀항 건수 크게 늘어
영·프, 서로 책임 떠넘기기만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기 위해 영불해협을 건너던 난민 수십명이 24일(현지시간) 보트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영국 입국 기준이 강화되자 밀항 등 위험한 경로를 택하는 난민이 크게 늘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난민 대응에 뒷짐을 지고 있다가 대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BBC 등 영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한 어부가 프랑스 북부 해안에 시신 수십구가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조대에 신고했다. 프랑스와 영국 구조대가 인근을 수색한 결과 27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당초 어린 소녀 1명 등 여성 5명을 포함해 3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고 발표했는데 이후 사망자 수를 수정했다. AFP통신은 “프랑스 당국이 해당 보트에 34명이 탑승했던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양국 구조대가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사망한 이들은 영국으로 향하던 난민들로 확인됐다. 다르마냉 장관은 “희생자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면서 “다만 보트는 독일에서 구입했으며 횡단을 시도한 대부분의 난민들이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번 참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밀항업자 4명을 체포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이번 참사는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2014년 이래 영불해협에서 발생한 단일 인명피해 중 가장 큰 규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즉각 전화 통화를 하고 공동 대응을 약속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해협이 무덤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책임자를 찾아 엄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존슨 총리도 긴급 회의를 주재한 뒤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영국은 밀항업자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수단 등 분쟁 중인 조국을 떠나는 난민들은 주로 영국을 최종 목적지로 삼는다. 영국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느슨한 규제를 적용하는 데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난민들이 적응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 출입국 기준이 까다로워지자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던 난민들은 안전한 경로 대신 소형 보트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는 위험한 여정을 택하고 있다.

영국 매체 PA는 올해에만 2만5700명이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다면서 이는 지난해의 3배가 넘는 수치라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영국으로 불법 도항하려는 시도가 4만7000여건이나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 모두 난민 사태 대처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영국행을 택하는 난민에게 빗장을 걸어 잠근 채 프랑스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는 영불해협을 건너는 난민을 막기 위해 밀항업자 1552명을 체포하고 북서부 항구도시 덩케르크 난민촌을 폐쇄했지만 밀항 규모는 줄지 않고 있다. BBC는 프랑스 경찰 600명이 모든 해안선을 감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밀항 단속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난민에게 안전한 이동수단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이 공식 입국 통로를 막으면서 밀항업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보트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하며 밀항을 돕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톰 데이비스 국제앰네스티 영국 난민·이민자 인권운동 관계자는 “안전한 수단을 마련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라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가디언은 비극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극우 지지층을 잃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영국 집권 보수당 정부가 난민정책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디언은 “브렉시트 이후 밀항으로 영국에 들어오는 난민은 더 늘어났다”면서 “보수당이 브렉시트로 국경 통제 권한을 되찾을 수 있다고 내세운 명분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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