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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미술의 세계

'모두가 누리는 건축' 추구하는 건축가 장수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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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08] 경기도 양평, 볼트 하우스(Vault House·2020)는 대지 706㎡(약 213평), 연면적 133㎡(약 40평) 규모의 2층 집이다. '볼트'(Vault) 설명을 위해서는 위대한 현대 건축가 루이스 칸을 끌어들여야 한다.

설계 디자인은 이용자가 어떤 공간을 경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다. 한 사람이 느끼는 공간감의 체화를 위해서 안에서 밖으로, 실내를 먼저 디자인하고 외관을 디자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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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볼트 하우스 외관/ 사진제공 = 장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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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부가 구분된 '방'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룸'의 개념은 "건축은 하나의 룸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된다"고 말한 루이스 칸에서 가져온 것이다.

칸의 건축 철학은 형태-질서-디자인(Form-Order-Design), 서비스 공간(Servant and Served Space), 침묵과 빛(Silence and Light)이 핵심 개념이다. 공간의 구조는 빛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생명력 있는 자연광의 공간만이 진정한 공간이다. 칸은 "평면은 방의 사회다. 방은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Dallas)와 가까운 포트워스(Fort Worth)에 있는 킴벨 미술관(본관)은 1972년 칸의 설계로 완성됐다. 악평을 받기도 한 콘크리트 외벽과 달리 내부는 기능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천장을 W 모양으로, 빛이 들어오면 반사가 되고 또 반사가 된 빛이 미술관을 밝히게 만들었다.

칸의 말년 작품,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국회의사당은 기하학적 도형, 자연광의 극적 도입, 콘크리트와 벽돌 사용으로 칸만의 독특한 건축을 창출하였다. 원형 공간 상부는 볼트(Vault·둥근 천장)의 연속으로 빛의 연출이 이어진다.

볼트는 전통적으로 독립된 공간을 만드는 장치이다. 킴벨 미술관에서 보듯이, 볼트는 외부에서 유입된 자연광이 내부에 머물게 하고,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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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볼트 하우스 내부/ 사진제공 = 장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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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볼트 하우스에서도 볼트의 면을 따라 산란된 빛이 공간을 채우고 벽과 천장을 구분하는 선들이 사라진다. 세 개의 볼트 구조물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 교차하며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의 볼트 이외에는 클라이언트의 잠재적 필요를 고려해 설계했다. 거실, 주방, 주방 위 메자닌(mezzanine·중간층) 모두 공용 공간으로 벽 없이 유연하게 연결돼 있다. 중앙 볼트를 기준으로 서쪽의 또 다른 볼트는, 곡면 부분이 외벽이 되어 실(室)들을 둥글게 감고 돈다. 방의 중심선을 따라 아치형 창문 두 개가 대칭으로 마주 본다. 바깥의 자연광은 거실로 들어온 뒤 천장 곡면을 따라 공간을 채운다. 매 분 바뀌는 해가 짧은 초겨울처럼, 실내의 밝기와 분위기는 시시각각 변한다.

볼트 하우스는 기존 주택보다 훨씬 개방되었기에 단열이 더욱 중요했다. 강 구조에 ALC(Atoclaved Lightweight Concrete·경량화된 기포 콘크리트) 블록을 쌓는 공법을 적용했다. ALC 블록은 자체로 단열 성능을 가진 데다 목재처럼 현장에서 바로 잘라 쓸 수 있다. 단열재를 덧댈 필요가 없어 벽 두께를 줄이고 곡선 형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시공 과정도 철근콘크리트조보다 간결해 볼트가 맞물리는 코너 부분을 수월하게 해결했다. 볼트 하우스는 바깥과 실내의 표면 단차도 거의 없다. 사람이 땅에 포근히 쌓여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모리스 타워(Morris HQ)는 길을 걸어가는 대중에게 빛과 자연을 제공하는 작은 문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건물의 입면에서 두드러지는 아치형 오프닝은 파사드를 열어주는 큰 복층의 문을 콘셉트로 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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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타워(Morris HQ) 조감도 / 사진 제공 = 장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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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아치문들은 북향인 파사드의 그림자 사이사이로 남산 쪽에서 비추는 자연광을 퇴계로 쪽으로 통과시켜 보행자 길 자체를 활성화시키는 도시적 요소가 된다. 커튼 월과는 판이하게, 솔리드와 오프닝의 명확한 대조를 통해 아치 창·문들이 정확하게 의도한 오프닝이라는 걸 강조하고자 했다.

특히 지상층에 있는 아치 문을 통과하면 도시 안의 오아시스와 같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숨겨진 정원은, 커피숍과 휴게를 겸용하여 도시 속 작은 "urban jungle"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도시적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퇴계로 건너편의 대형 블록 건물들과 현장 바로 후면의 작은 상업 시설들 사이에서 중간 스케일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구동(舊棟·리모델링 동)의 증축을 6층으로 최소화하고, 8층의 신축과 연결되었지만 두 개로 나눠지는 덩어리로 디자인해 작고 큰 건물 사이에서 독자적인 빌딩이 되는 것을 피하고 주위의 어떤 스케일과도 조화로운 매싱으로 디자인하였다.

모리스 타워는 현재 확장 진행형이다. 각각의 필지 위에 합쳐진 상태이면서도 도시적 스케일을 고려한 독립적인 건축 공간을 지향한다.

장수현은 건축물은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프로그램, 콘텐츠, 사용자의 생활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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