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여기까지. ^_^p”
“익명 인터뷰하고 다닌다는 그분, 이젠 대놓고 공작질한다”
29일 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당을 발칵 뒤집어놨다. ‘여기까지’라는 말을 두곤 이 대표가 중대 결심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공작질’이라는 표현을 놓곤 윤 후보 측 인사를 공개 저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_^p’ 이모티콘에 대해선 “상대를 누르거나 야유한다는 의미의 엄지를 거꾸로 내리는 모습을 알파벳 소문자 p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 중진의원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당 대표와 대선 후보 측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충돌하는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다음 날인 30일에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두문불출하자 당은 종일 뒤숭숭했다. 당 대표실은 이날 “금일 이후 대표의 모든 공식 일정은 취소됐다. 당 관계자 등 언론에서 보도되는 대표 관련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짤막하게 공지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별다른 설명 없이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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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대표는 전날 오후 6시 30분부터 당 소속 의원 5명과 약 두시간 동안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다. 한 참석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가 의원들과의 개별 인연을 언급하면서 ‘함께 잘 해보자’고 말하는 등 식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식사 자리가 끝난 뒤 이 대표의 기류가 바뀌었다고 한다. 복수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표가 몇몇 당 인사들에게 전화로 ‘여기까지 하겠다’는 취지의 뜻을 전해 만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아무래도 식사 후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당 안팎에서 무슨 일이냐는 연락이 쏟아져 이 대표에게 ‘걱정된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윤 후보 측의 불편한 관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 대표는 이전에도 윤 후보 측과 갈등을 빚었을 때 최고위 회의에서 입을 닫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 있다. 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처음이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와 윤 후보 측의 해묵은 갈등이 대선을 99일 앞두고 폭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 점퍼를 입고 있다. 왼쪽은 이준석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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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 선출 뒤 이 대표와 후보 측은 줄곧 살얼음판을 걸었다. 이 대표는 후보 측 인사들을 ‘하이에나’에 비유해 비판했고, 한기호 전 사무총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틀대던 갈등에 결정적인 불을 당긴 것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을 둘러싼 당내 충돌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 대표는 29일 “이제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려면 솟값 쳐주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걸 더 얹어 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인 ‘김종인 영입파’였다.
여기에 더해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리고, 이 대표가 통보받지 못한 상태에서 윤 후보의 29일 충청 방문 일정이 언론에 보도돼 ‘대표 패싱 논란’이 일자 이 대표는 29일 “이준석이 간다고 발표하는 일정은 이준석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라”고 불쾌해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에 위치한 2차전지 우수강소기업 클레버를 방문해 관계자와 함께 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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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돌발 행동에 윤 후보 측도 진위 파악에 나서는 등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였다. 이날 충북 청주를 방문한 윤 후보는 취재진에 “이유를 파악해보고 (이 대표를) 만나보라고 권성동 사무총장에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당대표 패싱 논란에는 “잘 모르겠다. 저는 (후보로서) 내 역할을 다할 뿐이다”라고 답했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라디오에서 “(갈등설은) 민망한 일”이라며 “패싱 논란은 후보에게도 안 좋고, 국민이 보기 좋은 모습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후보 측은 이날 통화에서 “충청 지역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가 나갔고, 당시 대표실 실무진과도 논의 중인 상태였다”며 “윤 후보도 보도가 나간 뒤에야 일정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권성동 사무총장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이 대표의 사무실을 찾아 약 30분 동안 기다렸지만, 이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권 사무총장은 “이 대표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내일이라도 기회가 되면 만나볼 의향이 있다”며 “대표가 오늘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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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중진 의원들은 우려를 표했다. 김태흠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선 후보, 당 대표, 선대위 핵심 인사들 왜 이러십니까”라며 “지난 5년간 당이 겪은 수모와 무력감을 잊었나. 지금의 모습은 사욕만 가득하고 전략과 시대정신이 부재한 무능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김태호 의원은 “이번 대선은 차·포 다 떼고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다”며 “당 대표가 설 자리를 잃으면 대선을 어떻게 치르나. 누구든 후보의 눈과 귀를 가려선 안 된다”고 적었다. 홍준표 의원은 ‘청년의꿈’ 게시판에 “당 대표를 겉돌게 하면 대선을 망친다”는 글을 올렸다.
당 일각에선 이 대표를 향해 “가벼운 처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다선 의원은 “당의 수장인 이 대표가 중요한 국면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당의 분란을 조장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와 갈등을 충분히 정무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음에도 상황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윤 후보 측의 잘못도 있다”(당 초선의원)는 반응도 나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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