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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이 변이' 못믿는 동료 협박해 분석…오미크론 첫발견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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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된 거겠지…”.

지난 11월 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규모 민간 연구소의 과학 책임자 라켈 비아나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샘플 분석 결과를 받아들고 이렇게 생각했다. 변이의 수가 지금까지의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발견된 변이는 델타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해 있었다. 그때까진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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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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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을 최초로 발견한 남아공 과학자들이 새 변이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숨 가빴던 닷새간의 과정을 공개했다. 이들은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미크론 변이를 처음 본 순간을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오미크론 최초 발견자인 비아나는 결과지를 받아든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처음엔 분석 과정의 오류를 의심했다. 그런데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결과가 틀린 게 아니라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만한 일이었고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불안을 감지한 비아나는 남아공 국립전염성질병연구소(NICD)에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결과를 믿지 않는 NICD 동료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비아나는 “새로운 변이가 등장한 것이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협박으로 이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NICD 연구원들은 20~21일 주말 근무를 자처했다. 이들은 이틀에 걸쳐 비아나가 보내온 8개 샘플을 재분석했고, 모두 똑같은 변이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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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 샘플 분석 중인 과학자.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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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모두 변이 모양이 너무나 기이해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지난 일주일간 급증한 하루 확진자 수가 연구원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11월 초 채취한 샘플에서 ‘S-유전자 탈락’ 현상이 발견됐던 사실도 떠올랐다. S-유전자는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를 구별하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 8월 이후 모습을 감췄는데 ‘S-유전자 탈락’ 변이가 재등장해 의아했었다고 한다.

다음날, NICD는 32명의 샘플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추가 분석하는 동시에 남아공 전역 보건부 및 민간 연구소가 보유한 검체의 염기서열 분석을 요청했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비아나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당시 현장을 지휘한 염기서열 분석가 다니엘 아모아코는 그 순간을 “무서웠다”고 표현했다.

새 변이의 등장을 확신한 NICD 연구원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곧바로 글로벌 과학 데이터베이스(GISAID)에 해당 결과를 등록했다. 이미 보츠와나와 홍콩에서도 동일한 유전자 염기서열 사례가 보고된 것을 확인했고,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24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새 변이 발견을 통보했고, 25일 새 변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비아나가 오미크론을 발견한 지 5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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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한 어린이가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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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과학자들은 남아공이 변이를 발견하자마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신속·투명하게 보고한 덕분에 대응 시간을 벌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미크론 변이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확인된 게 없어서다.

남아공에서는 오미크론 변이가 4차 대유행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확진자 수는 폭증하고 있다. 2주 전 300명대 안팎이던 확진자 수는 4000명을 넘어섰고, 이번 주말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드리안 푸렌 남아공 NICD 원장 대행은 이날 로이터에 “오미크론 변이가 델타 변이의 전염력을 능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루 확진자가 4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안젤리크 쿠체 남아공의사협회장은 CNN·텔레그래프에 “오미크론 변이 환자 대다수는 증상이 경미하고 입원이 필요 없는 상태”라며 “백신을 접종한 경우 증상도 덜하고, 회복도 빨랐다”고 강조했다. 현재 오미크론 변이를 찾아낸 남아공 과학자들은 이제 오미크론의 전파력과 치명률 등을 연구 중이다. 연구 결과는 3~4주 안에 나올 것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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