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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100일 전에 앞선 후보가 이긴다’?…지난 7차례 대선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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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08

역대 대선 승리 가른 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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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에 나선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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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여덟번째 대선입니다.

지금까지 일곱 차례 대선 성적표는 ‘4 대 3’입니다.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보수 쪽이 네번 이겼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민주당 쪽이 세번 이겼습니다. 이번에는 어느 쪽이 이길까요?

최근 각 언론에 “역대 대선은 100일 전 시점에 앞선 후보가 실제로 당선됐다”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2002년 노무현 사례를 제외하고는 100일 전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실제로 선거에서 이겼다는 분석입니다.

이런 분석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앞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을 싣습니다. 하긴 국민의힘 사람들이 요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87년 이후 성적표 ‘4대3’ 막상막하

“방심 땐 지고 간절하면 이겨” 교훈


D-100 여론이 좌우? 섣부른 가설

그런데 저는 ‘100일 전에 앞선 후보가 이긴다’는 가설이 섣부르다고 생각합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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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100일은 너무 긴 시간입니다.

백일잔치는 영유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의 유습입니다. 선거 100일 전 민심이 뒤집히지 않는다고요? 1980~1990년대에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 유통 속도가 두배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의 일입니다. 모바일 혁명으로 다시 또 두배로 빨라진 것이 2010년대의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조간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요?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이 뉴스는 2~3일 전 소식인 것 같은데 신문에 왜 이제야 실었지?”라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어제 일어난 일입니다. 온종일 시시각각 새로운 소식을 받아들이다 보니 뇌가 어제의 일을 2~3일 전의 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1980~1990년대의 100일은 지금 며칠에 해당할까요? 두배의 두배면 25일 정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가오는 연말 연초에 집중적으로 쏟아질 여론조사 결과, 그리고 2022년 2월1일 설 연휴를 전후해서 또다시 쏟아질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야 2022년 3월9일 대선 결과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둘째, 후보 변수가 있습니다.

역대 대선 후보들은 대개 유명 인사들이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같은 대중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후보도 국민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2017년 당내 경선에 나서기는 했지만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되면서 지명도가 높아진 사람입니다. 전국적 인물이 아닙니다. 유권자들은 이재명 후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윤석열 후보도 검찰총장 시절 조국 법무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맞서는 바람에 갑자기 떠오른 사람입니다. 윤석열 후보가 어떤 리더십을 가졌는지, 어떤 노선과 정책을 가졌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두 사람의 지지도는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 위에 올라탄 지지도입니다. 대선은 결국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유권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정당보다는 인물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 국민의힘’이 아니라,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 국면으로 가면 지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D-90여일 이-윤 유례없는 초접전

막판 집중력·절박함이 승부 가를 것

대선 결과 예측해볼 단서 두가지

그래도 대선 결과가 궁금하시지요? 약간의 단서를 드리겠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익히고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선거에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서 역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선거를 치르는 후보나 정당은 물론이고 선거의 주인인 유권자들도 지금까지 일곱 차례의 대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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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등 5공 세력은 김영삼-김대중 양 김이 서로에게 후보를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들의 예견은 적중했습니다.

1987년 12월 대선 결과는 절묘했습니다. 노태우 36.64%,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였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무려 55.07%였습니다. 선거의 교훈은 분명했습니다.

“분열하면 진다.”

13대 대선은 특히 지역 투표 현상이 뚜렷했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김영삼 후보는 부산·경남에서 김대중 후보는 호남에서 몰표를 받았습니다. 김대중 후보의 광주·전남 득표율은 90%를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3등을 하는 바람에 야권 분열의 책임을 뒤집어썼습니다.

1990년 노태우 민정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3당 합당이 이뤄졌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지만, 명백한 야합이었습니다. 노무현, 김정길 등 대의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은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1992년 대선은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지형에서 치러졌습니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41.96%로 여유 있게 당선됐습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정주영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정의가 실종된 선거였습니다. 1992년 대선의 교훈은 “선거는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사람들은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후보는 노쇠한 정치인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신한국당 대선 주자는 아홉명이나 됐습니다. 언론은 이들을 ‘9룡’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9룡 중에 누군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김대중-김종필(디제이피) 연대가 이뤄졌습니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진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 병역 문제로 비틀거렸습니다. 외환위기 사태까지 터졌습니다.

투표 당일 호남의 유권자들은 오전에 투표를 자제했습니다. 호남 쪽 투표율이 높게 나타나면 영남 쪽 지역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심모원려였습니다. 오후에 투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선거 결과는 김대중 후보의 1.53%포인트 차이 승리였습니다.

보수 쪽에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는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오만하면 진다”는 교훈이 남았습니다. 민주당 쪽에는 “간절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교훈이 남았습니다. 당시의 득표율 차이 최소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2년 대선도 그랬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5년 내내 차기 대통령처럼 행세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막판에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단일화를 승부수로 띄웠습니다. 도박이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2.33%포인트 승리였습니다. 보수 쪽에는 “방심하면 진다”는 교훈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2007년 대선은 일찌감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가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여당은 이합집산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고 정동영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공염불이었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무려 22.53%포인트 격차로 패배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일패도지(一敗塗地)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한나라당 영구집권론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2009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2012년 대선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별로 없던 문재인 후보는 주도권을 놓치고 이리저리 휘둘렸습니다.

개표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3.53%포인트 패배였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1년 뒤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2012년 대선을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라고 규정하며 패인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2030세대가 결집했지만, 5060세대는 더 결집했습니다. 호남이 결집했지만, 영남은 더 결집했습니다. 우리 지지층이 유례없이 결집했지만, 상대 지지층은 더 결집했습니다.”

지지층 결집 경쟁에서 밀렸다는 진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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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에서 누가 웃을까? 직선제로 치러진 지난 7차례 대선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선거 포스터를 보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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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과 절박감 차이가 승부처

2017년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따로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 듯합니다.

역대 대선의 교훈을 정리하면 “방심하면 지고 간절하면 이긴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판세는 윤석열 후보가 앞서 있지만, 이재명 후보가 추격 중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유례없는 접전 양상입니다. 내년 3월9일 승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막판 집중력과 절박감이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 방심하는 쪽이 질 것입니다. 간절한 쪽이 이길 것입니다.

지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에서 어느 쪽이 방심하고 있나요? 어느 쪽 지지자들이 더 간절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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