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과학, '진실'에 근거해야 희망이 된다
대국민 메시지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고흥=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의 발사 참관을 마치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2021.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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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입니다. 모든 것이 '정치화'하는 시기죠. 하다못해 대통령 후보 가족들의 사생활까지도 온갖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엔 무슨 얘기를 해도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느냐는 비아냥을 듣기 마련이죠. 그러나 '사실'과 '가짜뉴스'는 구분해야 하고, 그것이 언론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나로도에 '병풍'은 없었다."
과학계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와 관련된 예민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지난 10월21일 전남 고흥군 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첫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 발사 행사와 관련된 '병풍' 논란이었습니다.
당시 한 언론은 문 대통령이 누리호 발사 직후 현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배경이 허전해지자 과학기술자들을 '병풍'으로 동원해 뒤에 세웠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배후'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지목됐죠. 해당 언론은 "지난 10년여간 누리호 개발을 위해 밤낮으로 했던 고생이 누구에겐 잠깐의 이벤트로 생각하는 것 같아 정말 자괴감을 느꼈다"는 누리호 개발 참여 과학자의 말을 전했죠. 그러면서 "우리 힘으로 우주발사체를 만든 역사적 현장에 고생한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고 정치적 이벤트만 있었다"고 꼬집었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이 발사 참관을 마친 후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실시간 공중파 생중계 됐으니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고, 게다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문 대통령의 뒤에 부채 모양으로 몰려서 서 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탁 비서관은 해당 기사에 대해 기사를 쓴 기자가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이런 철딱서니 없으며 악마 같은 기사들을 볼 때마다 대체 이 기자 하나 때문에 왜 이리 피곤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라며 "그게 목적이면 축하한다, 성공했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는데, 덕분에 몹시 피곤하다. 다음부턴 내게 물어보고 써라"라고 비꼬았죠.
대국민 메시지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고흥=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의 발사 참관을 마치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2021.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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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맞는 말을 하는 걸까요? 정말 과학기술자들은 '병풍'으로 동원됐을까요? 안타깝게도 당시 현장엔 저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항우연이 코로나19 방역 등과 관련해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소수 인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최근 현장에 있었던 복수의 관계자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상률 항우연 원장과 몇몇 직원들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병풍' 주장에 대해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병풍 주장은) 오버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이 원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오후 5시40분을 전후해 현장에 도착한 직후 연구1동에 가서 휴식을 취하다가 발사 과정을 지켜 보면서 대국민 메시지 내용을 조정하고 오후 6시5분 쯤 결과가 나오자 방송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 이 원장은 "사진을 보고 '상상'을 하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참관하는 내내 같이 있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의 방문은) 연구자들을 위한 격려였다"면서 "기술적인 행사를 정치화하는 것 같아서 (병풍 논란와 관련된) 논의 자체가 불편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원장 뿐만 아니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항우연 직원 A씨는 '병풍' 논란의 근원이 된 사진과 관련해 "누구도 현장에서 '병풍'처럼 둘러 서라고 지시한 사람은 없었다. 좁은 현장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 B씨도 "문 대통령의 팬인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자연스럽게 다가가 사인과 사진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병풍 논란은 '작문'"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들은 '병풍' 존재 여부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정반대의 진술을 기자에게 들려줬습니다. 누가 맞는 지는 저 또한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병풍 논란을 이제 와서 재조명하는 것은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를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정치는 통치 수단의 일부로, 의사 결정의 근거로 과학을 대합니다. 그러다 주도세력이 욕심을 부려 이용하려 들거나 편견 때문에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을 때가 많습니다. 우주 분야 하나로만 좁혀 봐도,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기술 개발과 관련된 현장 사정을 무시한 채 달 탐사 사업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겼다가 되돌려진 게 대표적 사건입니다. 또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을 이유로 과학기술부를 폐지하는가 하면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던 나로호 발사가 연달아 실패하자 다른 예산을 동결시켜 연속성이 보장되어야 할 우주 분야 연구개발(R&D)이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정치의 과도한 개입 사례로 꼽힙니다.
반대로 과학에서 정치를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 대표적이었죠. 이번 '병풍' 논란도 비슷한 사례로 보입니다. 병풍 논란은 항우연 한 관계자의 입에서 시작됐는데, 전 정부 시절 고위직을 지냈던 그는 현 정부 들어 '보복 감사'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에 자신의 입에서 나온 '병풍'이라는 한 단어가 미칠 영향을 모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우리는 소설보다 과학을 택합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선됐습니다. 코로나19라는 비상 시국에도 '가짜 뉴스'를 적극적 활용해 정국을 좌우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져 왔던 혼란과 무능, 독선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과학과 정치는 '진실'에 근거해야 모두의 희망이 된다는 사실, 요즘 우리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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