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박근혜 사면이 ‘국민 통합’이라면, 차별금지법은 왜 아직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하는 이들이 본 박근혜 사면

“촛불 정부에 기대한 건 소수자 포용”


한겨레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앞에서 14년간 유예된 차별금지법의 연내 제정을 요구하며, 무지개와 각종 차별 금지 사유가 적힌 깃발 등을 든 채 국회 주변을 에워싸는 국회 포위 행동을 펼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김민수(34)씨는 지난 24일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두 번 느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소식을 접했을 때, 청와대가 ‘국민통합’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국민 대통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뒤 ‘국민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고 밝히면서 성별·나이·장애성·성정체성·성지향성 등으로 차별받아온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진짜 국민통합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국회 입법의 영역이지만, 대통령 임기 막바지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아무개(20)씨는 27일 <한겨레>에 “촛불로 탄생한 정권인 만큼 사면 결정을 해선 안 됐다. 내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촛불정부에 기대한 것은 사면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를 포용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리란 기대가 임기 초반에 가득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가 다가오고, 여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아무개(34)씨는 “그 사람을 사면해 결집할 수 있는 집단은 정말 한정적이지 않나. 오히려 분열을 조장했으면 조장했지, 통합의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통합을 이야기하는 대상인 ‘국민’에 나라를 말아먹으려던 범죄자와 그 지지자는 포함돼도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10명 중 9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10명 중 7명은 ‘성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전국 성인 1027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1.2%(매우 찬성 32.9%, 대체로 찬성 38.3%)로 나타났다.

하지만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도 차별금지법에 소극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6일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중에 성소수자에 관한 부분은 오해와 곡해가 너무 많아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14일 “법을 강제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많아 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합의 지향점은 자유, 인권, 민주, 평화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사면에는 앞서 말한 어떤 가치도 들어가 있지 않다”며 “이런 사면을 단행하면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박정희식 국민통합, 즉 국민총화와 같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통합이라고 했을 땐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집단들, 소수자 집단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농성장을 지킨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말하는 ‘국민 통합’이라는 말 자체가 기만적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지지자를 확장하고 싶다는 속내를 ‘국민통합’이라는 말로 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처음 정부 입법으로 추진된 이후 14년째 법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됐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이 국회 국민동원청원 요건을 갖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법안 심사기한은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2024년 5월로 미뤄졌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바로가기: 차별금지법 ‘찬반’ 묻자…민주는 겁을 냈고, 국힘은 관심 없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22460.html

국민 70% “차별금지법 찬성”…종부세 “유지·강화” 52%-“완화” 41%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21134.html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