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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신고 뒤 돌아온 건 취하 통지서… 직장갑질 10건 중 7건 ‘단순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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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간 1만2997건 접수

괴롭힘 유형 중 ‘폭언’ 36% 최다

개선지도 23.9%… 檢송치는 1.2%

현행법상 신고 보복만 송치 가능

“법 개정·근로감독관 역할강화 필요”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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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저한테 욕하는 녹음 파일도, 카톡 내용도 다 증거로 남아 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신고가 취하됐어요. 정말 미치겠습니다.”

직장인 A씨에게 사장의 괴롭힘은 일상이었다. 사장은 그에게 말끝마다 “×발, 죽여버린다”며 욕을 했고, 손을 들고 때릴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A씨는 용기를 내 노동청에 증거를 제출하고 사장을 신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취하 통지서뿐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5개월이 지났지만, 신고한 괴롭힘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경우는 1%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10건 중 7건은 그냥 취하되거나 단순 종결 처리됐다.

29일 직장갑질119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갑질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16일부터 올해 10월13일까지 접수된 사건은 1만2997건이다. 이 중 개선지도가 이뤄진 사건은 23.9%(3100건),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2%(160건)에 그쳤다. 43.5%는 그냥 취하됐다.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은 유형별로는 폭언이 35.7%로 가장 많았고, 부당 인사조치(15.5%), 험담·따돌림(11.5%) 등이 뒤를 이었다.

갑질금지법은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과태료 부과 등 처벌조항을 담아 한 차례 개정됐다. 개정 법은 지난 10월14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이 역시 과태료 처분일 뿐,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현행 갑질금지법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경우는 회사가 신고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줬을 때(근로기준법 76조3 6항 위반)가 유일하다. 또 검찰에 송치됐다고 해서 반드시 검찰이 기소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처벌까지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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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신고된 사건 10건 중 7건 이상이 취하되거나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단순 행정종결 처리되고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간접고용·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고, 법 적용을 받더라도 고용노동부의 소극적인 행정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정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는 검찰 송치나 검사 기소가 필요하지 않아 고용부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가능하다”며 적극적인 과태료 부과를 주문했다.

또 직장갑질119는 올해 단체에 신고된 이메일 제보 중 갑질 내용이 심각하고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한 20대 갑질 사례도 선정했다. 상사의 폭언·폭행·성추행 등을 신고한 뒤 ‘보복 갑질’을 당하거나 휴일에도 사적으로 불러내 식사 자리를 강요하는 사례 등이 포함됐다. 직장갑질119는 “반쪽짜리 갑질금지법을 개정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갑질을 당하지 않고, 갑질을 당하면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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