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이슈 세계 속 한류

다시 날개 편 '재즈계의 BTS' 나윤선, "새 앨범, 우울의 벼랑 끝에서 만들었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8일 11집 '웨이킹 월드' 발매하고 유럽 투어 시작
한국일보

11집 'Waking World'를 발표한 재즈 가수 나윤선. 엔플러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신적 고통은 때로 예술가에게 창작의 땔감이 된다. 팬데믹으로 날지 못하는 새가 됐던 '재즈계의 방탄소년단' 나윤선이 그랬다. 유럽이 주 무대인지라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곤 했던 그는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채 국내에서 암담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기약 없이 지연되는 희망은 그에게 고통만 안겨주지 않았다. 데뷔 이후 자작곡만으로 채운 첫 앨범 '웨이킹 월드(Waking World)'가 만들어졌으니까.

7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만난 재즈 가수 나윤선은 28일 발매되는 '웨이킹 월드'에 대해 "코로나19가 아니면 생각도 못 했을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시종일관 짙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신작을 내놓고 콘서트를 재개하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간이 나서 만든 앨범이라기보다는 벼랑 끝까지 간 상황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용기를 내서 만든 앨범입니다."

새 앨범에 담긴 곡은 11곡. 재즈 앨범에서 흔한 스탠더드 곡도, 리메이크 곡도 없다. 오로지 자작곡으로 채웠다.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도 직접 했고 프로듀서 역할까지 했다. 녹음은 지난해 하늘길이 열렸을 때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현지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코로나19 첫해에는 거의 아무것도 못 했어요. 심하게 우울한 상태가 이어졌죠. 그러다 작년 1월쯤 정신 차리고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녹음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전에 조금 써뒀던 곡을 다시 정리하고 새로 곡을 썼어요. 해외 작곡가, 프로듀서와 온라인으로 만나 작업할 수도 있었지만, 전 구식이어서인지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코로나19 기간에 겪었던 감정의 파노라마는 곧 신곡의 가사가 됐다. 첫 곡 '버드 온 더 그라운드(Bird on the Ground)'는 몇 시간 동안 날지 않고 걷기만 하는 새를 지켜보다 가사가 나왔고, '마이 마더(My Mother)'는 어머니와 모처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며 느낀 감정을 담은 곡이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이후 30년 가까이 무대에 서면서도 여전히 무대공포증에 시달린다는 나윤선의 음악에는 시간이 지나도 무뎌디지 않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시대적 우울과 절망, 각성과 반성을 노래하는 새 앨범 역시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매너리즘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었던 9집 ‘She Moves On(쉬 무브스 온)’, 일렉트로닉과 미니멀리즘을 껴안았던 10집 ‘Immersion(이머전)’과는 음악적 색채도 사뭇 다르다. 재즈, 팝, 포크, 인디 록, 민속음악이 고루 녹아 있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음악이랄까. 이번 앨범을 전 세계에 배급하는 워너도 장르 분류를 ‘재즈’로 정하기까지 오랜 기간 고심했다고 한다.

나윤선은 이번 앨범의 재킷 사진도 직접 찍었다.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리모컨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이 담겼다. 그는 "누군가는 영정 사진 같아서 안 되겠다고도 하던데 (웃음) 그냥 나 혼자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일보

나윤선의 11집 'Waking World' 커버 이미지. 엔플러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유럽과 국내에서 드문드문 공연을 했던 나윤선은 올해 팬데믹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10일 출국해 27일부터 2개월간 프랑스 전국 투어를 한 뒤 스위스 등을 거쳐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공연한다. 이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투어를 이어가고 연말엔 국내 공연도 연다. "그동안 집에 돌아와 있으면서도 늘 집을 그리워하는 상태로 지냈어요.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할 땐 늘 벌받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만 막상 쉬고 있을 땐 무대가 그립더군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염려되는 점도 많지만, 이런 삶이 팔자인 것 같아요.(웃음)"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