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복수의결권 법안에 또다시 제동을 걸자 이를 정부 국정과제·총선 공약으로 삼았던 더불어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거 국면에 따라 정책에 대한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탓에 업계 고충이 외면받고 있다.
11일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는 "이번 법안 자체의 부작용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한 번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향후 대기업에도 적용해 달라거나 벤처기업에 혜택을 더 달라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며 "이런 후폭풍을 감안해 재차 논의하기 위해 법안 통과를 보류했다"고 전했다.
앞서 담당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이러한 우려 사항을 충분히 논의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는데도 법사위 간사인 박주민 의원 등이 같은 이유를 가져와 법안 통과를 늦추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주장은 앞서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정부, 여당 지도부 의견과 큰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국정과제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 항목의 실천과제에 복수의결권을 올려두고 있으며 2020년 말에는 정부안을 따로 발의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민주당에서도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벤처 육성을 2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복수의결권을 세부 공약으로 담았다. 임기 초반 각종 개혁과제를 무리하게 추진하던 노선을 벗어나 2020년께 친시장·친기업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 지도부의 주요 과제였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분야에서는 복수의결권과 함께 대기업 지주사에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등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대거 발표하며 여당도 돌아선 중도층 민심을 회복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자산시장 과열 현상으로 국내 주식투자자가 급증했고, 소액 개미주주들의 표심을 얻는 것이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앞다퉈 소액주주 권익 보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주식·경제 분야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며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액주주 권익을 약화시키는 방향의 정책인 복수의결권을 입법하는 일은 부담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반대 의견을 낸 박용진·오기형·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요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으로 소액주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자 복수의결권으로 창업자가 마음대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천만 주식투자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선거공학적 논리를 이용했다.
현 정권이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정책의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며 정책 도입에 큰 차질이 생겼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복수의결권 법안을 담당하는 산자위 중소벤처기업소위원회가 1년여간 손실보상제도 이외 법안을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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