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전남 보성 오일장
보성 오일장은 2, 7장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장터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30㎞ 떨어진 벌교에 비하면 수산물 구색은 다소 아쉬운 편이다. 생물은 낙지와 꼬막, 홍어가 있고 병어나 말린 장대, 민어 새끼가 인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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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몇 가지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2004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녹차 밭 너머에서 볼일을 보고는 보성읍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외관이 번듯한 곳을 일부러 찾아 들어갔다. 계산하고 방에 들어가서는 버릇대로 TV 리모컨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없는 게 당연했다. 박물관에 있음직한 로터리TV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도 돌리는 게 빠진 채로 말이다. 숙소에서 할 수 있는 게 리모컨 들고 이리저리 채널 돌리는 재미인데, 채널을 돌리려면 침대에서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채널 돌리는 재미가 사라진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잠뿐이었다. 보성 옆이 장흥이다. 장흥에서 일보고 보성으로 가는 길에 해안길을 택했다. 장흥 키조개마을에서 출발해 율포해수욕장까지의 길이 참으로 좋았다. 주암호로 해서 벌교 가던 벚꽃길도 좋은 기억이다. 이번도 좋음과 안 좋음이 같이한 출장길이었다.
농사지은 메밀로 면을 뽑아 직접 담근 김치와 함께 내는 장터의 온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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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도착해 보성 읍내를 다녔다. 원래 목적인 식당 세 곳 모두 쉬었다. 보성 읍내에서 30㎞ 가까이 떨어진 벌교읍으로 갔다. 식사를 해결하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굴과 꼬막이 지천인 벌교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경만 했다. 어차피 장날은 내일이니, 장터에서 사서 올라가면 될 듯싶었다. 시장에서 잠시 걸으면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옛 거리와 마주한다. 양조장이며, 보성여관 등이 아직 그대로 있다. 길 따라가다 보면 소설을 요약한 조형물이 서 있는 공원이 있다. 잠시, 요약본을 읽으면서 완독했다는 기억만 되살렸다. 벌교를 나와 율포에서 바지락 캐는 할매 구경하고는 저녁 먹으러 보성 읍내로 갔다. 아무 곳이나 가려고 했지만 아무 곳이나 딱히 문 연 곳이 없다. 문 연 곳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떡갈비를 주문했지만 반 남겼다. 떡갈비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음식이 나왔다. 따듯함도 없는, 전자레인지에 막 데워 나온 듯한 상태였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사를 끝냈다. 내일 오일장은 그래도 괜찮겠지 자신을 위로하며 숙소로 갔다. 여기서도 또다시 TV가 문제. 다른 기능은 다 되는데 외부입력이 안 된다. 전에는 휴대용 안드로이드 TV를 설치해서 보고 싶은 것을 봤었다. 문제는 여기 모텔 TV의 입력 단자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안 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TV며 식당이며 보성하고 나하고 뭐가 안 맞는 모양이다.
밥과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 3000원 시장 백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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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7일 오일장이다. 보성 오일장은 2, 7장. 비슷한 규모의 벌교는 4, 9장이다. 장터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장터. 반은 농산물, 반은 수산물로 나뉘어 있다. 수산물을 보니 전남의 여느 장터와 달리 냉동이 많다. 낙지와 꼬막, 홍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냉동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성에는 큰 포구가 없는 듯싶었다. 율포 정도가 그나마 어시장도 있어 포구다운 모양새다. 병어나 말린 장대, 민어 새끼가 인기다. 나란히 놓인 병어와 덕대. 모양도 비슷하거니와 맛도 비슷하다. 구별하려고 하면 머리만 아프니 그냥 사면 된다. 병어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것이 참꼬막과 새꼬막이다. 조개껍데기에 난 주름이 깊으면 참꼬막, 얕으면 새꼬막이다. 참꼬막이 더 맛있다고들 하는데 사실 둘 차이는 식감이다. 참꼬막이 보드라운 맛이라면 새꼬막은 쫄깃하다. 새꼬막은 1㎏에 8000원에서 1만원 사이, 참꼬막은 3만원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먹어보면 가격 차이가 세 배 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각각 특유의 맛이 있다. 맛이라는 게 다름의 의미지 차이의 의미는 아니다. 보성 로컬푸드 매장에서 딸기를 봤다. 모양이 좋은 큰 딸기가 작은 딸기에 비해 세 배 넘게 비쌌다. 과일에서 크기가 맛을 보장하지 않음에도 현실은 외형과 이미지로 가격 차이를 준다. 참꼬막이 비싼 이유는 하나다. 안 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새꼬막은 가게마다 차고 넘쳤다. 안 나는 상황에서 찾는 이가 많아지면 부르는 게 값이다. 지금 참꼬막이 딱 그렇다. 보성 오일장에는 꼬막이 별로 없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 갈 때 다시 벌교로 가서 꼬막을 샀다. 새꼬막과 참꼬막을 섞어서 샀다. “꼬막 삶을 줄 아는 겨? 폭 삶으면 안 돼. 80도 정도에서 데쳐. 폭 삶으면 살이 쪼그라들어. 먹을 거 없어.” 판매하시는 분이 꼬막 든 봉지를 주면서 건넨 한 마디다. 벌교 1번수산 (061)857-0434
보성 가면서 이것은 꼭 먹어야지 했던 것이 국수다. 국수 없는 동네는 없다. 장터마다 인기 메뉴에서 잔치국수는 빠지지 않는다. 여기 국수는 조금 특별하다. 농사지은 메밀과 밀로 국수를 만든다. 우리밀 국수를 먹을까 해서 주문했다가 바로 취소하고는 메밀 온면을 주문했다. 메뉴를 주문하면 면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국수 나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탁자 위에는 구운 달걀이 그 틈을 노리고 있다. 달걀 하나 까먹는 사이 국수가 나온다. 꾸미라고는 목이버섯과 쑥갓, 김 조금 올려져 있다. 면을 맛보고, 국물을 음미하니 꾸미의 많고 적음은 부질없었다. 둘의 조화가 아주 좋았다. 뚝뚝 끊기는 면발과 가쓰오부시 국물에 청양고추로 포인트를 준 것이 아주 좋았다. 보성 식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갔던 곳은 김치를 직접 담갔다. 국숫집 또한 담근 김치를 내주는데 얼큰한 온면 국물과의 조화가 아주 좋았다. 직접 끓인 육개장국수나 닭국수 또한 맛나 보였다. 아이만을 위한 메뉴는 아니지만, 돈가스 메뉴도 있어 가족끼리 가도 괜찮은 곳이다. 벌교와 고흥 경계에 있다. 오가는 길이라면 다음에 또 갈 곳이다. 해맑음제면소 0507-1424-7290
큰 포구 없어 수산물 대부분 냉동
그나마 낙지·꼬막·홍어는 생물
벌교 옆 영향에 꼬막 찾는 이 적어
맑은 국물 ‘바지락칼국수’ 더 유명
면과 국물 따로 끓여내 맛 일품
테이블 3개 작은 식당 ‘할매밥집’
식탁 가득 백반이 3000원이라니…
보성으로 가면서 꼬막 먹을 생각은 없었다. 정식이라는 게 화려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부족함이 많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싶은 인지상정을 잘 이용하는 메뉴일 뿐이다. 꼬막무침 하나 주문해서 밥하고 먹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한다. 꼬막은 진흙 개펄에서 자란다. 바지락은 모래나 작은 돌이 섞인 곳에서 잘 자란다. 벌교하면 꼬막만 노래 부르니 다른 걸 찾지 않는다. 보성 바다에는 꼬막만 날 듯싶지만, 바지락도 난다. 보성 향토시장에는 보성과 이웃한 동네에서 나는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끓이는 곳이 있다. 시장 구경 얼추 끝내고는 칼국수 한 그릇 하러 갔다. 면과 국물을 따로 끓여 낸다. 맑은 바지락 국물이 제대로다. 여기 또한 어제 먹은 국숫집처럼 칼국수 국물에 잘 맞춰 김치를 담갔다. 젓갈 냄새는 숨기고 아삭한 식감은 살린 김치다. 보성에서 술을 마신다면 다음날 해장은 여기다. 국물이 끝내준다. 보성 바지락칼국수 (061)852-9822
가격이 세 배 비싸다고, 참꼬막이 세 배 더 맛있는 건 아니다. 껍데기의 주름 골이 넓고 깊은 참꼬막(위 원 사진 ), 골이 촘촘한 것이 새꼬막(아래 원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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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에서 꼬막을 사고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때는 밥때, 취재를 떠나 밥을 먹을까 해서 동네를 다시 몇 바퀴 돌다가 시장 입구로 돌아왔다. 시장 건너편에서 입구를 바라보는 순간 밥집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어제와 오늘 몇 번이고 식당을 지나쳤지만 보지 못했다. 관심이 다른 것에만 가 있던 탓이다. 취재에 관한 생각을 놓고 나니 그제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이 세 개 있는 작은 식당이다. 노년의 부부가 식사하고 있었다. 혼자 식사 가능한지 여쭤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작은 쟁반 가득 반찬 놓인 것이 나오고 국과 막 퍼 담은 밥이 나왔다. 간은 내 입에 조금 셌지만, 허투루 만든 반찬이 아니었다. 반찬 구성이 당일 만드는 것은 별로 없고, 오래 두고 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밥을 먹다가 메뉴판을 봤다. “3000원요!?” 질문도 아닌 감탄사도 아닌 소리에 식사하시던 할배가 “여기가 그려”. 메뉴판은 단출했고 통일성이 있었다. 백반·소주·맥주 3000원, 막걸리 2000원, 커피 200원이 전부였다. 밥 먹는 사이 손님이 들어왔고 식사하시던 분과 지인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장터 할매 한 분이 와서는 밥을 가져간다. 동네 사람들이 오가는 식당. 여럿이 와서 밥과 술을 먹어야 타산이 맞을 듯싶었다. 나처럼 혼자는 민폐인 듯싶어 잠시 얼마를 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 가격 그대로 내고 나왔다. 할매의 말 품새나 손님들의 대화에서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느꼈다. 밥이 있고,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도시에서 이런 밥은 기대하기 어렵다. 바쁘다는 핑계로 밥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 여기는 밥이 먼저였고 사람이 먼저였다. 인사만큼은 성심껏 하고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할매밥집(전화가 없다. 시장 입구에 있다)
▶ 김진영 식품 MD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역마살 만렙의 27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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