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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의 침묵,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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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선거 관리야말로 민주주의 지탱하는 기초

편향성 시비 선관위원을 대선 앞두고 연임시키려던

이유 소명하지 않으면 공정선거 훼손 혐의 못 벗어

새해 벽두부터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몰상식한 인사를 감행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해외 순방 중 부랴부랴 사표를 수리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벌어졌다. 물러나는 상임위원은 자기 뜻은 아니었다며 그 무리한 인사의 책임을 오롯이 임명권자에게 돌렸다.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대통령은 당장 국민 앞에 왜 애초 3년 전 공정성 시비가 일었던 그 편향적 인물을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으며, 왜 그 문제의 인물을 3년 더 연임시키려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제대로 그 이유를 소명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공정 선거를 고의로 훼손하려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가 없다. 만약 대통령이 권력 재창출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심각한 부정이다.

대통령은 세습 군주가 아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이 참여하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잠시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그 권력의 정당성은 오로지 공정한 선거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은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법적·정치적·도덕적 책무를 진다.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바로 그 순간 민주정은 왕정이나 귀족정보다 못한 최악의 정치 제도로 추락하고 만다.

지난주 상황을 보면, 중앙선관위 위원 9명 중 7명은 이미 대통령·대법원장·여당이 추천한 친여(親與) 성향 인물이었다. 남은 2명 가운데 한 명은 여야 공동 추천 인사였으며, 야당 추천 몫의 한 자리는 지금도 여당의 거부로 비어 있다. 명실 공히 ‘친여 선관위’가 구성된 상태다. 그도 모자라 대통령은 정부의 오랜 관례를 허물고 바로 그 선관위원을 연임시키려 했다. 그 결정이 얼마나 부당했으면 선관위 지도부를 위시한 2900여 명 직원 전체가 집단적으로 반발했겠는가.

이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대통령은 왜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한 인사를 감행했는가? 대통령은 진정 자기 진영 사람들이 선거 관리를 맡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투표는 국민 개개인이 소신대로 하는데, 선관위가 어떻게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가? 선관위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대통령은 왜 헌법 정신 그대로 가장 중립적이고 신뢰감 있는 인물을 물색해서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대통령이 공정 선거의 훼손을 우려하는 수많은 국민의 정당한 비판에 귀를 닫고 모르쇠로 버틸 수 있나? 도대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지난 4·15 총선 이후 이례적으로 광범위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2021년 8월 15~19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4·15 총선의 조작 의혹에 대해서 43.4%가 “검찰 수사, 특검을 통해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40.7%가 부정선거 잡음이 있는 사전투표제 폐지하고 투표기간을 늘리면 된다고 대답했고, 51.1%는 드루킹 사건 관련 대통령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며, 또 58.2%는 4.15 총선 소송을 기한 내 처리하지 않는 것은 대법원의 직무유기라고 대답했다. 선관위가 이미 공신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다. 참으로 서글프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모든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캠프 특보’라는 의혹에 휩싸인 사람을 청문회도 없이 선관위 상임위원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그전에 청와대가 총동원되어 지방선거에 개입한 혐의도 드러났다. 대통령의 심복은 지난 대선 당시 인터넷 여론 조작을 주도해서 현재 실형을 살고 있다. 대법원은 180일 이내에 선거 소송을 처리하라는 법의 명령을 무시하고 4·15 총선에 대한 선거 재판을 장기간 사실상 사보타주했다. 이러한 사태를 계속 보아왔기에 상식을 가진 국민은 선거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가 없다.

대통령의 부당한 인사는 일단 저지됐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대통령이 떼어야 한다. 대통령은 왜 그런 무리한 인사를 감행했는지 국민 앞에 이유를 밝혀야 한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특유의 ‘침묵 정치’로 일관했다. 이제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다.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해명하고, 잘못을 시인한다면 사죄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의 침묵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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