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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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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폭력 피해 신고하니 “너 미쳤어” 입막은 해병대...군, 진상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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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고 후 피해자 쓰레기장 옆 간이휴게실 배치
입막음 의혹 대대장 “피해 사실 제대로 안 알려”


경향신문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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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영관급 장교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려는 여군에게 “너 미쳤냐”며 입막음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돼 국방부가 조사에 나섰다. 신고 직후 근무지가 옮겨지고 다른 상관들로부터 2차 가해까지 당한 피해자는 결국 전역을 택했다.

2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해병대 소속 여군 A씨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상관인 B중사로부터 여러 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B중사는 둘만 있는 사무실에서 짧은 바지를 걷어 올려 속옷을 보여주는가 하면, 외박을 다녀온 A씨에게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잤는지 보고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B중사가 성희롱 외에도 부대 내에서 따돌림을 주도하며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A씨는 2018년 3월 부대 주임원사에게 피해 사실을 상담했지만 불이익이 돌아왔다. 부대 지휘부는 A씨를 기존 근무지인 간부사무실에서 음식물 쓰레기장 옆 간이휴게실로 이전 배치했다. 이 휴게실에는 전화기, 프린터 등 사무용품도, 냉·난방 기구도 구비되지 않았다. 반면 가해자인 B중사는 별도의 전보 조치 없이 기존 사무실에서 계속 일했다.

A씨는 같은 해 5월8일 당시 부대장이던 C중령(대대장)에게 “상급부대에 보고해 B중사를 처벌해달라”고 정식으로 신고했다. 내부 규정상 부대원의 성폭력 피해가 신고되면 대대장은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해당 사실을 사단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C중령은 이 같은 절차를 무시하고 다음날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B중사와 수차례 마주치고 욕설을 듣기도 했다. 프린터가 없어 진술서 출력도 B중사의 컴퓨터로 해야 했는데 이때 A씨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간부회의에서 C중령이 ‘사단장께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니 문제가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며 “피해 사실 공론화를 막으려는 압박으로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조사 이후 C중령이 상급부대에 관련 내용을 신고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B중사가 서면경고 처분을 받는 것으로 조사가 마무리되자 5월11일 A씨는 C중령에게 상부에 신고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C중령이 “부대 내부에서 끝날 수 있는 사안인데 상부에 보고하게 되면 너도 징계받게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나흘 동안 C씨의 회유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결국 A씨는 5월15일 사단 성고충상담관에게 성희롱 피해를 신고했다. 상담관에게 신고한 뒤 A씨는 B중사와 분리 조치됐다. 이 사실을 들은 C중령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야 너 미쳤어?”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옆에 있던 A씨의 동료도 이 같은 발언을 함께 들었다고 한다.

부대에 복귀한 A씨는 부대 작전장교 D소령에게 불려갔다. 당시 A씨는 C중령의 눈을 피해 성고충상담관을 만나기 위해 “행정업무를 하러 간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을 문제 삼아 ‘허위 보고’라고 질책한 것이다. D소령은 A씨가 있는 자리에서 상관인 중대장을 불러 혼내기도 했다.

사단에 신고한 이후 B중사는 징계를 받고 2018년 8월 해임됐다. 그러나 영관급 장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A씨는 이들로부터 입은 ‘2차 피해’를 알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 이후 시행된 국방부 특별성폭력 신고 기간인 지난해 6월 C중령과 D소령을 신고했다. C중령과 D소령은 현재 국방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A씨는 2018년 10월 다른 부대로 전출됐으나 2020년 4월 C중령이 있는 곳으로 다시 파견 배치를 받았다. 같은 부대에서 C중령과 두 달간 함께 근무하게 된 A씨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지난해 11월 전역을 선택했다. A씨는 “이 중사 사망 사건 보도를 보고 피해 과정이 내 사례와 너무 같아 놀랐다. 군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확실한 조사를 통해 적절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중령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A씨가) 본인의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아 (사단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B중사로부터 성 관련 피해를 입은 다른 여군의 사례를 제보하며 자신의 피해도 섞어서 말해 잘못된 점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C중령은 A씨가 성고충상담관에게 신고하자 폭언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화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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