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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초동시각] 집값 하락과 후견지명(後見之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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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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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달 초 열린 3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 기조도 하향 조정 방향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홍 부총리가 관계장관회의에서 내비쳤던 지금까지의 조심스런 어조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있었던 2021년 마지막 회의(35차)에서 ‘하향 안정 흐름으로 전환’, 또 올해 첫 회의(36차)에서는 ‘하향 안정세로의 전환 가속도’라는 식의 절제된 표현을 썼다. ‘집값이 떨어졌고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담은 단정적 전망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 집값이 3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정부 관계자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고 있는 모습이다. 그 바탕에는 지난해 83만6000가구 공급계획 등을 발표한 2·4 대책이 시장안정 효과를 냈다는 자평이 깔려있다. 목표물량의 60% 수준인 50만 가구 입지를 후보지로 선정하는 등 전례 없는 성과를 나타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사실 2·4 대책 발표 이후 홍 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꼭지론’,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등 표현을 통해 여러 차례 집값 하락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결국 지난해 말부터 집값 상승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더니 올 들어서는 정부 예측이 현실로 나타난 모습이다. 이 같은 정부 자평에는 숱하게 실패로 지적 받았던 부동산 정책의 마무리를 제대로 해냈다는 안도감마저 내비친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는 2·4 대책의 효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동안의 규제 일변도에서 공급 기조로 선회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집값 조정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심지어 공급이 아닌 유동성 축소와 금리 인상 등 인위적 규제가 실수요자들의 강제적 시장 이탈을 가져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2·4 대책은 정비사업과 관련한 중장기적 과제로 실질적으로 시장에 물량을 공급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를 시장 안정화 기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초 대책이 발표됐음에도 2021년 전국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13.25%로 전년(7.04%)의 두 배에 육박했고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12억원을 돌파해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6억708만원) 대비 2배 수준으로 올랐다. 이 때문에 최근 집값 하향 추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관망세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차기 정부에서의 다주택자 양도세·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 등으로 인해 매도자도 적극적으로 매도하기 어렵고, 매수자들도 조급하게 매수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과 반대로 ‘후견지명(後見之明)’이라는 말이 있다. 전자가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는 밝은 지혜’를 뜻한다면 후자는 ‘처음부터 결과가 그렇게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다. 과거를 설명하려는 성향인 후견지명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후견지명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로부터 배우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과거부터 그런 일들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예상대로 일이 벌어졌으니 앞으로도 자신들의 후견지명을 선견지명처럼 믿고 배우려 들지 않는 것이다. 현 정부는 시장 안정 효과를 자신하며 최근까지 30여 차례의 정책을 내놨다. 그러다가 임기 막바지에 들어서야 나타난 최근 집값 하락이 오히려 정부를 "거 봐, 내가 뭐랬어"라는 후견지명의 늪에 빠진 모양새로 만드는 것은 아닐 지 우려된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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