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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슈 초중고 개학·등교 이모저모

개학 닷새 앞두고, 학부모에 등교 책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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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학교가 설문조사로 결정, 맞벌이·전업주부 갈등만 부추겨

“옆 학교는 등교, 우리는 원격?”… 들쑥날쑥 방침에 학부모들 아우성

조선일보

거리두기 등교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25일 오전 개학을 맞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등교를 하고 있다. 2022.1.25 mon@yna.co.kr/2022-01-25 09:47:32/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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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학년 부분 등교, 1~6학년 전면 원격 수업 중 어느 걸 원하십니까.” 서울 동작구에 사는 초등 1년생(입학 예정) 학부모 김모(40)씨는 지난 23일 학교 알림장 앱을 통해 이런 설문 문자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맞벌이다 보니 자녀가 학교를 가지 않으면 직장에 휴가를 내든지 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전날에는 설문이 전면 등교와 1~2학년 전면·3~6학년 부분 등교였으나 더 축소됐다. 김씨는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가 입학하자마자 원격 수업을 할 수 있냐”면서 “원격 수업이 결정되면 당장 애봐 줄 사람을 구하든지 휴가를 내든지 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학기 개학(3월 2일)을 닷새 앞두고 일선 학교들이 혼란에 빠졌다. 코로나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대확산하자 교육부가 “학생들 수업권 보장을 위해 원격 수업은 되도록 신중히 하라”고 한 방침을 뒤집고 지난 21일 “학교장이 원격 수업을 할지 말지 알아서 하라”고 지침을 바꿨기 때문.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개학 첫날은 가급적 단축 수업하고, 아이들에게 자가진단키트를 나눠주라”고만 안내하곤 추가 설명을 않고 있다. 각 학교들은 당황하고 있다. 결국 상당수 학교들이 학부모들 의견을 묻기로 하고 급히 “개학 후 2주 동안 원격 수업을 할지 대면 수업을 할지 정해달라”고 설문조사를 돌리고 있다. 교육부는 학교에, 학교는 다시 학부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이다. “학부모 다수결로 아이들 등교를 결정하자는 거냐”는 반응도 나온다.

가장 큰 고민은 초등 저학년생 학부모들이다. 돌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고려해 코로나 유행 국면에서도 교육 당국은 지난 2년간 초등 1~2학년생은 매일 등교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부 학교에서 초1~2학년까지 ‘전면 원격 수업’ 대상에 넣어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과연 초1~2학년이 컴퓨터 앞에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반발이 터지는 실정이다.

각급 학교들도 고민이다. 오미크론 유행으로 학부모들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원격파’와 ‘등교파’가 첨예하게 나뉘어 있어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더라도 갈등과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서모(49)씨는 올해 중2와 초6에 올라가는 자녀를 뒀다. 새 학기 전면 등교를 할 것으로 믿고 아이들에게 백신도 맞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이 ‘전면 등교’ 원칙을 사실상 철회하자 “2년 동안 비대면 수업하느라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서 “거리 두기 완화를 거론하면서 학교는 왜 이렇게 하느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도 양주시 초교 4년생 학부모 홍모(34)씨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비대면 수업으로 가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장은 “등교를 하든 원격수업을 하든 다른 의견을 가진 학부모들이 항의 전화를 하고 난리를 칠 텐데 그걸 학교가 알아서 감당하라고 하는 셈이라 착잡하다”고 말했다. 교장들 사이에서는 “방역부터 역학조사, 감염 확산 책임에 이어 등교 여부도 학교에 다 떠넘길 거면 교육부는 뭐 하려고 있느냐”는 말까지 돌고 있다. ‘개학 후 2주 동안 원격 수업 자율 결정’ 지침이 끝난 2주 후에는 학교별로 수업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도 결정되지 않아 더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들 불만 중 큰 부분은 그동안 원격 수업 수준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6학년 학부모 강모(45)씨는 “미리미리 온라인 수업 품질을 높여 놓았다면 (원격 수업 한다고 해도)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2년 넘게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한 아이들이 또 이런 불이익을 받게 만드느냐”고 말했다. 교육부 담당자는 “오미크론 유행이 심각하지만 학교·지역별로 처한 상황이 다양한데 예전처럼 정부가 일괄적으로 등교 수업 여부를 결정해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개학 후 2주간은 초기 적응 기간인 만큼 학교들이 학부모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자율적으로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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