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 언급도 없어 '이중적인 태도' 지적…반미공동전선 의도
김정은-푸틴(CG) |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미국을 향해 '주권국가의 존엄과 자주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외치던 북한이 정작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는 일방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데다 북러 양국 모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반미 공동전선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 지지로 가결될 때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로 남았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마저 기권표를 던진 '신중한 표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정당화한 셈이다.
북한의 이런 자세는 그간 대외적으로 내세웠던 '다른 나라의 자주권 침해 불가' 입장과 모순되는 등 이중적인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평소 미사일 시험발사 등 자신의 무력 시위에 한미일 등 주변국이 우려할 때마다 "국방력 강화는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걸고든 것은 국가의 존엄과 자주권 침해"라는 논리를 펼쳤다.
국가 주권을 그토록 옹호하는 북한이 정작 침략국 러시아 편을 드는 이유는 핵 문제로 미국과 맞서고 있는 자신들의 외교정책 핵심이 반미에 맞춰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문제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를 받는 상황이지만, 국방력 강화와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다.
주한 EU 회원국 대사들, 우크라이나 연대 의사 |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우방인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 중 하나로 대북 추가 제재를 반대하고 기존 제재 완화 목소리를 내면서 북한 편들기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이런 러시아에 대해 북한 지도부로서는 대놓고 비판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밝힌 공식 입장에서도 이런 속내가 읽힌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내놓은 첫 공식 입장에서 "사태의 근원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이라며 '미국 탓'으로 돌렸다.
특히 외무성은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합리적이며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채 한사코 나토의 동쪽 확대를 추진하며 유럽에서의 안보 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가 강변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으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불법 침공을 정당화하려는데 북한이 이런 논리를 수용해 대외 주장을 펼친 셈이다.
아울러 북한은 러시아의 행위에 '침략'이나 '침공' 등의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사태'라고만 표현, 그간 자신들이 주장해온 '주권국가' 논리와의 정합성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러시아 입장을 두둔한다기보다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라며 "북한 대외정책의 초점은 모두 미국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북한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 |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표면상 러시아를 지지하면서도 이번 전쟁으로 말미암아 국방력 강화, 특히 '핵 보유 절대 고수' 입장을 더욱 확고히 굳혔으리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했던 우크라이나가 1994년 스스로 핵을 포기한 뒤 오늘날 강대국 러시아에 유린당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도하면서 내부적으로 핵 보유의 정당성을 다시금 평가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한미동맹재단에 따르면 역대 한미연합사령관들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북한의 '핵 불포기' 결정이 더 공고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임 교수는 "북한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때부터 핵을 고수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태를 보면서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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