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은 대러 경제제재와 외교적 압박,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세 개의 축에서 완전히 일치된 행보를 하고 있다. 유엔이 2일(현지시간) 1997년 이후 25년만에 소집한 긴급특별총회에서는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다국적 기업들의 러시아 철수 ·투자 철회는 물론, 스포츠·문화·예술계와 소비자들까지 민간 부문에서도 자발적인 러시아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푸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립돼 있다”고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처럼 푸틴 정권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유엔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 채택에 나란히 기권한 중국, 인도를 비롯해 인도·태평양 지역 나라 상당수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모호하거나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표면적인 ‘중립’을 취해온 중국은 서방의 강도높은 제재에 처한 러시아 경제에 숨통을 터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권·영토 보존이라는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원칙에 배치되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푸틴의 뒷배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유럽에 팔지 않는 가스를 중국이 전부 사들이는 식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오랜 우방 관계인 인도의 셈법은 좀더 복잡하다. 인도는 무기 공급의 절반 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카슈미르 분쟁 관련 결의안 등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인도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과 국경 분쟁 등으로 대립하고 있는 인도는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는 최근 “우크라이나 위기는 인도가 그동안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유지해온 아슬아슬한 균형에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는 나라다. 이스라엘은 서방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위해서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모두 우호관계인 이스라엘은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양국 정상과 잇따라 통화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베트남은 러시아를 직접 규탄하는 대신 ‘모든 당사자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미온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유엔 긴급특별총회 결의안 채택에서도 기권을 행사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러시아산 무기·항공기·잠수함을 대거 사들인 베트남으로서는 안보·경제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베트남 매체 두 곳의 기자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러시아의 ‘침공’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는 등 자체 검열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가 40% 이상 늘어난 인도네시아도 대러 제재 부과에는 선을 긋고 있다. 필리핀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면서도 러시아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미국과 동맹 관계인 태국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법을 지지한다는 입장만을 냈다. 러시아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무상 지원받은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국민들 사이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인기도 높은 편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강력한 아시아 동맹국 중에서 러시아 제재에 망설였던 나라로 한국을 거론하며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부과한 제재를 이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독자 조치는 실행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도착한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임시 난민 수용시설로 이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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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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