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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초접전 대선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찰' '반성' 글 잇따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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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득표율 차이'로 승부 가린 초접전 대선 후
진보 성향 게시판 "민주당 비판하면 묵살" 비판에
조회수 25만·3,000여 회 추천 '폭풍 공감'
'보수' 커뮤니티에선 "호남 훌륭"
전문가 "초접전 선거 결과로 상대 인정"
"타자·자기 비판 균형이뤄야 생명력 지속"
한국일보

10일 오전 광주 동구 서남동행정복지센터 외벽에 붙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공무원들이 철거하고 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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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습니다. 역대 최소 표차(24만여표, 득표율 0.7%포인트)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죠. 대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성별로 얼마나 생각이 다르고 갈라져 있는지도 드러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치에 관심이 높은 누리꾼들이 많이 활동하는 '보배드림' '에펨코리아(펨코)' '클리앙'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편향된 정치색을 반성·성찰하거나 상대 진영을 칭찬·축하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평소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광경인데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살펴봤습니다.

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인 10일 새벽 친여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오늘부터 보배드림의 독립을 선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쓴이는 "그 동안 자동차 사이트인데 정치 이야기나 많이 하고, 문재인과 민주당 비판하면 비추(비추천)에 욕하고, 반대쪽 이야기를 완전히 묵살하고 있던 보배드림은 이제 없다"며 "건전하게 자동차 이야기를 위주로하되, 정치이야기를 한다면 나와 다르다고 '일베'로 몰아세우면서 마치 전두환 뺨치는 폭력을 행사했던 1번남(기호 1번 이재명 찍은 남성)들의 폭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글쓴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민주당 또는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후보 지지자가 많은 이 커뮤니티에 불만이 많았는지, 여권에 편향된 정치색을 대놓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이날 하루 종일 회원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베스트)에 오르며 조회수가 25만5,000여회에 달했고, 회원들이 글에 공감을 표시하는 '추천'도 3,140회나 됐다는 겁니다. 아마도 글쓴이와 같은 불만을 갖고 있던 회원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친여 커뮤니티 "비판하면 묵살" "20대 비난 말아야" 자성

한국일보

보배드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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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게시판 있어서 정치 얘기 적는데 뭐가 문제냐"(어머****), "보수 성향 짙은 곳으로 가지 왜 여길 바꾸려고 하느냐"며 불편해 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회원 대부분은 "선한 영향력 행사하는 보배드림 좋긴한 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무조건 1번 되는 줄 알았다. 당분간 정치글은 패스할란다"(조용히****) "이게 정답이지 '정치충'(시도 때도 없이 정치관련 이야기 하는 사람)이 좀먹고 있던 자동차 커뮤니티 이번 기회로 다시 살아나라"(담배***), "보배(드림)에 정상적인 사람이 많다는 걸 첨 봤다"(편**), "보배드림을 흐리는 정치충 아웃"이라며 글쓴이를 감쌌습니다.

특히 "나도 민주당이지만 이제 정치 얘기 그만"(리듬타****), "이재명 찍었고 잠도 안오고 화는 나는데 글에는 완전 공감함"(zzin******), "이재명을 항상 지지해왔고 찍었지만 문재인정권 못한 부분을 이야기 하면 댓글 테러당하는 보배에 많이 화가 나 있었다"며 나와 다른 의견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문제에 공감을 나타낸 민주당 이재명 지지자도 많았습니다.

글쓴이도 11일 다시 "이렇게 까지 추천을 많이 받을 글이 아닌거 같은데, 저와 같은 불만 많은 분들이 많으셨나보다"라는 글을 남기며 놀라워했네요. 그는 편향성을 없애려면 "정치에 균형잡힌 시각을 기본으로 한 많은 네티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소수에 의해 특정 정권에 기생하는 선전사이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친여 성향의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인 '클리앙'에도 "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피드백하는 건 좋지만, 상대 후보를 지지한 분들, 20대 남성을 너무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그들도 우리나라 국민이고 앞으로 선거에서 설득해 함께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고*)는 글이 올라와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또 잘못된 주장으로 여론을 흐린 사실을 인지한 한 회원은 뒤늦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고***)는 글도 남겼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빅데이터 분석 기법 중 하나인 '구글 트렌드'로 선거를 분석해 여러 차례 글을 올렸던 그는 "선거 결과를 보니 분석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잘못된 데이터로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앞으로 클리앙에 정치와 관련된 글을 일체 쓰지 않을 것"이라며 약속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보통 익명성에 기대어 비방을 일삼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데 직접 '고해성사' 한 것이죠.

그는 또 "국민의 다수가 행복한 삶을 꿈꾸며 윤석열을 선택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전해 드린다"고 윤 당선자 지지자를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이 글도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보수' 펨코에선 "호남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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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펨코리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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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에펨코리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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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 2030세대가 많아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하는 회원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펨코)'에서는 한창 개표 중인 10일 자정쯤 한 회원이 올린 '호남 비하할 게 아니라 훌륭한 거 아님'이라는 제목의 글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재명 후보가 8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반면 윤석열 당선인이 두자릿수 지지율 기록 중인 개표 현황이 담긴 화면과 함께 "정말 보수를 응원하는 거라면 혐오 말고 뽑은 사람을 칭찬해줘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10명 중 9명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화나 호남 사람과 지역을 혐오하지 말고, 오히려 다른 의견을 가진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하는 사람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겁니다.

평소 문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등 여권에 긍정적이거나 칭찬하는 글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자칫 역효과나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는 내용인데, 이 글 역시 조회수 21만1,700여회를 기록하며 최상위권에 올랐습니다. 회원들도 2,240여회 '추천' 버튼을 누르며 공감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댓글에도 이 후보에게 몰표를 준 호남을 비판하기 보다 "호남보수 고마워"(파이****) "역대 최고로 보수 지지해 준 공 인정해야 하고, 윤석열은 공약대로 호남 발전시켜줘 호남 사람들이 변하게 해야 한다"(우**) 등 우호적인 내용이 많이 달렸습니다.

펨코 운영진은 같은날 "정치 분야 관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 정말 많이 노력하는데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며 정치 성향을 둘러싼 무분별한 공격 자제를 당부하는 공지 글도 올렸습니다. 일부 회원들로부터 '운영진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근거없는 억측이 계속 이어지자 운영진이 직접 자제를 호소한 건데요. 선거가 워낙 치열해 이런 주장까지 난무했던 것 같습니다.

운영진은 회원들의 협조를 구하며 이재명 후보가 남긴 인사글을 삭제한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지난해 12월 9일 이재명 후보가 적진이나 다름 없는 펨코에 "쓴소리 단소리 모두 듣겠다"며 인사 글을 올렸지만, 운영진은 다음 날 "목적성 가입 및 활동, 셀프 홍보는 금지한다는 규정에 근거해 해당 글을 삭제하고 작성자를 차단 조치했다"고 공지했었죠.

"상대 인정, 커뮤니티 생명력 오래 가"

한국일보

균형.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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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성,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딱 반반으로 나뉜 선거 결과로 상대를 인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절반이나 되는 걸 확인하면서 이들과 계속 적으로만 살아갈 수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공존을 생각한 것"이라며 "팽팽한 결과여서 상대방 존재를 승인할 수 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만든 것이지, 만약 어느 한쪽의 압도적 승리였으면 이런 반성과 성찰이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커뮤니티의 자정 작용이 나타난 것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권상희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그 동안 입맛에 맞는 답만 찾아 자기 비판과 자정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받지 못한 회원들이 자정 노력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호기 교수도 "커뮤니티가 오래 지속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타자 비판과 자기 비판이 균형을 잘 이뤄야 한다"며 "그래야 커뮤니티의 생명력도 오래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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