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고유 권한 협의 없이 밀어붙여
태양절‧한미훈련 예정 4월 위기 고조 시기
안보 공백 땐 문재인 대통령 책임 우려도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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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반대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이 집무실 이전에 반대한 공식적인 이유는 ‘정권 교체기 안보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윤 당선인 측이 인사권·사면권·군 통수권 등 대통령 고유 권한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을 아무런 협의 없이 밀어붙이는 데 대한 누적된 불만이 터져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 개최 후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반대 입장을 처음 공식 발표했다. 50일도 남지 않은 새 정부 출범 전에, 그것도 국가안보가 가장 취약한 정권 교체기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갑작스레 연쇄 이동하게 될 경우 안보 공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이 원활한 인수인계 협조를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안보 우려까지 무시하며 협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다음달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4월15일)과 한·미연합훈련을 전후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4월 중에는 북한의 연례적 행사가 예정돼 있고, 올해 들어서만 열번째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며 “4월은 한·미 간 연례적인 훈련 행사가 있는 시기인 만큼 4월이 한반도 안보에 있어서 가장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만약 문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되는 집무실 이전으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문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우려도 담겨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국가 안보와 군 통수는 현 정부와 현 대통령의 내려놓을 수 없는 책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서욱 국방부 장관, 원인철 합참 의장 등이 인수위원회에 안보 우려를 재차 설명하고 협의해 현실적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 반대에는 훨씬 복합적인 원인이 누적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수위 측은 윤 당선인이 전날 집무실 이전 계획을 공개한 뒤에야 정부에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편성 등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와 합참 이전 등 군 통수권자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을 추진하면서 그 권한을 가진 문 대통령을 패싱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이 현 청와대 공간구조가 문 대통령의 불통을 낳았다고 주장하며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는 데 대한 불쾌감을 밝힌 적이 있다.
앞서도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이 문재인 정부 말 주요 직책 인사,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사면 등 대통령 인사·사면 권한을 내놓을 것을 공개 압박하는 데 대한 불만을 드러내 왔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과 배석자 없이 만나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먼저 제안했는데도 요구사항을 ‘회동 의제’라며 사전에 공개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권한 침해라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에 한 ‘현 정권 적폐 수사’ 발언에 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윤 당선인이 계속 반응하지 않는 것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 무시당한다고 여길 수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 발표 후 윤 당선인이 “5월10일 0시부로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며 집무실 이전을 강행할 뜻을 밝히면서 인수인계 과정에서의 파행은 불가피해졌다. 당장 윤 당선인이 기대했던 22일 국무회의에서의 예비비 편성 의결은 불가능해졌다. 청와대는 인수위와 안보 불안을 불식할 충분한 대책을 협의한 뒤에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한 차례 무산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도 단기간 안에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이날 만나 회동 일정과 의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윤 당선인 측이 자신들이 원하는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문 대통령이 임명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실무협의 분위기는 냉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집무실 이전 문제와 회동은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신·구 권력 갈등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이어서 회동이 성사되더라도 형식적인 덕담을 나누는 수준에 그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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