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를 보면 일단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것으로 나온다.
굳이 혈세를 들여 조급하게 집무실을 옮기는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아서다.
탈(脫)청와대를 놓고 신구권력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는것도 짜증스러울 것이다.
기존 관행을 깨뜨리는 시도는 항상 우려와 반발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하물며 지난 70여년간 대통령 관저였던 청와대에서 나오겠다는건 하나의 개혁이다.
당연히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수 밖에 없고, 덩달아 논란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기를 쓰고 반대하며 어깃장을 놓을 권리는 없다. 그럴 자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 역대 거의 모든 정권이 탈청와대를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자기들이 하면 탈권위주의이고, 윤석열이 하면 "민생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백해무익한 일"이 되는건지 민주당 정권이 스스로 자문할 일이다.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복기해보기 바란다.
당시 대통령은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청와대를 제왕적 대통령 권력과 동일시한것이다. 청와대를 적폐로 본것이나 다름없다.
"(광화문 집무후)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다.
권력의 벽에 둘러쌓인 구중궁궐 청와대에 갇히면 장삼이사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들어간뒤 이같은 약속은 잊혀졌다.
사회 각계각층을 만나 소통하는 대신 혼밥에 푹 빠진 대통령은 민심과 괴리됐고, 언론과의 접촉도 꺼려하는 극도의 폐쇄성을 보였다.
역대급 불통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딸 가족의 청와대 더부살이 여부를 국민들이 묻고 있지만 가타부타 한마디도 안한다.
국민만 보고 간다던 정권이 국민을 무시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대통령이 실행에 옮기지 못한 탈청와대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지지하는게 도리다.
하지만 온갖 궁색하고 구차한 이유를 대며 청와대 이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청와대 이전을 위해 윤 당선인이 요구한 예비비 476억원을 거부한것은 물론이고 뜬금없이 안보공백 타령이다.
예정에도 없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개최한 대통령이'한반도 위기' 운운하며 정권교체기 안보공백 공포를 부추기고 나섰다.
"정부 교체기에 더욱 경계심을 갖고 안보에 조그마한 불안 요인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까지 했다.
한마디로 안보공백이 생길수 있으니 청와대 이전을 도울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년 임기내내 북한이 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대도 '도발'이라는 단어 한번 제대로 쓴적 없는 정권이 뜬금없이 안보 걱정을 하는건 정말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이다.
대통령은 2년전 북한이 개성남북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때도 NSC에 참석하지 않았다.
총 한번 안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전락한 한미연합훈련조차 북한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고 규모를 축소했던게 누구였나.
북 미사일을 미상의 발사체라하고, 북의 무력시위에 유감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채 대화 신호라며 아전인수격 정신승리를 한게 누구였나.
북한이 막말을 해도 감싸기 바쁘고, 종전선언에 올인해 김정은에게 평화를 구걸하고, 한미동맹마저 삐걱거리게 만든게 이 정권이다.
이런 정권이 안보를 이유로 청와대 이전을 반대하는건 한편의 코미디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윤 당선인이 하는데 대한 질투심은 아닌지, 자격지심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그리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을 이행하겠다는데, 몽니를 부리는건 대선패배에 대한 분풀이로 국민 눈에 비칠수 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훼방을 놓는 수준이하 인성을 드러낸 트럼프의 막장행보와도 오버랩된다.
차라리 도와주기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게 그나마 진솔해보인다.
윤 당선인은 5월 10일 용산 국방부 청사에 입주하는 대신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당선인 집무실에서 대통령 첫업무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청와대의 비협조탓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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