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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우크라 난민촌 찾은 바이든, 가슴에 묻은 아들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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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숨진 장남 보, 2008년 이라크로 파병

바이든 "가족이 전쟁터 있을 때 기분 잘 알아"

참혹한 상황 감안한 듯 아들 사연 언급은 삼가

세계일보

2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의 우크라이나 난민촌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소녀를 꼭 안아주고 있다. 바르샤바=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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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전쟁터에 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저는 기억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후 이웃 폴란드로 피난한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만난 뒤 내놓은 말이다. 난민 가운데 특히 어린이들은 부모나 조부모가 아이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정작 본인은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간 경우가 많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미군 장교였던 아들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떠올렸겠으나 행여 ‘그때와 지금이 같으냐’는 비난이 일 수도 있음을 감안한 듯 아들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백악관에 따르면 폴란드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바르샤바의 한 대형 운동장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난민촌을 방문했다.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동하던 바이든 대통령은 “무엇을 보고 느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난민촌의 어린이들을 가리키며 “저 꼬마들 보이세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냥 안아보고 싶고,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도 전란 속에 가족과 헤어져 불편한 장소에서 지내야 하는 운명을 묵묵히 견디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난민촌의 아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아빠를 위해, 할아버지를 위해, 또 형과 오빠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소개한 바이든 대통령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전쟁터에 있을 때 어떤 기분인지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궁금해진다. 그냥 궁금할 뿐”이라며 “그저 전화가 안 오길 빌어야지”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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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이라크를 방문해 그곳에 주둔한 미 육군 부대의 장교이던 아들 보 바이든(2015년 사망)을 격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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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이 말은 장남 보 바이든(1969∼2015)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날이 촉망되는 소장 법률가였던 보는 9·11 테러 직후인 2003년 고향인 델라웨어 주(州)방위군 육군에 장교로 입대했다. 당시 나이 34세로 ‘늦깎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그가 속한 부대는 2008년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인 이라크로 보내져 이듬해까지 약 1년간 주둔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다. 현직 부통령 아들의 참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받아들여지며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게 사실이다. 훈장까지 받으며 이라크 파병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보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내는 등 정계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암으로 숨졌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으로 남아 있다.

그간 참전용사 유족, 또는 대형참사 희생자 유족과 만날 때 바이든 대통령은 보 이야기를 곧잘 꺼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로하는 자리에선 ‘참전용사 가족의 애달픈 처지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만 했을 뿐 아들 이름을 언급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이 이라크에 간 2008년은 미군이 이미 적군 주력을 격파하고 잔당을 소탕하던 시기다. 보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확률은 극히 낮았던 셈이다. 더욱이 보는 전쟁과 무관하게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군사대국 러시아의 침공으로 매일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현 우크라이나의 처지와 비교할 상황은 결코 아니라는 판단이 바이든 대통령으로 하여금 언행을 조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 및 민간인들을 향해 “정말 놀라운(amazing) 사람들”이란 찬사를 바쳤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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