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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우크라 침공] 러, 우크라 정체성 지우기?…문화유산·박물관 39곳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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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NBC뉴스 "우크라 '러 목표는 우리를 지도에서 지우는 것' 주장"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지금까지 최소 39곳의 문화유산과 박물관 등을 파괴하거나 약탈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미국 NBC뉴스가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전쟁통에 손상될라'…조각상에 보호막 씌우는 우크라인들
(르비우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21일(현지시간) 인부들이 고가 사다리를 이용해 건물 외관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에 보호막을 씌우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간 시설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2022.3.22 sungok@yna.co.kr


키이우(키예프)에 있는 비영리 정치단체 '트랜스애틀랜틱 대화 센터'(Transatlantic Dilogue Center)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전국에서 최소 39곳의 주요 역사·문화 시설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하고 폐허로 변했다.

하르키우 미술관 미즈기나 발렌티나 관장은 예술작품 2만5천여 점이 있는 미술관 주변에 러시아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면서 직원들이 작품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술관보다 하루 앞서 포격을 받은 17세기 유산 하르키우 홀리 도미션 성당은 피해를 면치 못했다. 성당 안에 대피해 있던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았으나 이 공격으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깨지고 일부 장식물들이 심하게 파손됐다.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마리우폴 시의회는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2천여 점이 전시된 아르히프 쿠인지 미술관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전시된 예술품들 상태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6일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1만5천여 명이 학살당한 드로비츠키 야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파괴했다면서 "정확히 80년 만에 나치가 돌아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7곳 있으며 1954년 체결된 헤이그협약은 역사적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목표로 공격하는 행위를 국제법상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일부 문화 당국은 현재 러시아가 저지르고 있는 문화유산 파괴가 이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이리나 포돌랴크 전 차관은 "러시아가 주택과 병원 학교는 물론 문화유산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즉 우리 유산과 역사, 정체성,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역사문화 시설 파괴가 이들 시설을 표적으로 삼은 것인지 민간인에 대한 공격 중에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인지는 명확지 않다. 러시아군은 침공 이후 민간인 거주지역 등 비군사시설까지 장거리 포격으로 공격하고 있다.

노스웨스턴대 요하난 페트로프스키-슈테른 교수는 "러시아의 역사문화시설 파괴는 고의적일 가능성과 부수적인 피해일 가능성이 모두 있지만 '고의적인 파괴'로 볼 여지가 더 많다"며 "러시아는 점령지 도서관에서 우크라이나 역사 교과서를 압수해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침공 전후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월 21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는 독립국이라는 게 없다.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옛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페트로프스키-슈테른 교수는 "푸틴은 1860년대 러시아 관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어나 우크라이나 국민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주권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리나 포돌랴크 전 차관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러시아의 주장은 순전히 허구이고 아픈 사람의 상상일 뿐"이라며 "이는 푸틴이 선택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의 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은 역사문화 유산 파괴를 막기 위해 중요한 유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설물 위에 보호 장치를 씌우는 등 대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으나 이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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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키이우 '성소피아 대성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소피아 대성당'(The Saint Sophia Cathedral) [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키이우에 있는 성소피아 대성당은 우크라이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꼽힌다. 1천 년이 넘은 이 황금 돔 교회는 한때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중심지였고 안에는 프레스코화와 성상, 모자이크 등 화려한 유물이 가득하다. 특히 금색 바탕에 성모 마리아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눈에 띈다.

컬럼비아대 유리 세브첸코 우크라이나어 교수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 모자이크를 "파괴할 수 없는 벽'이라고 부른다"며 "이들은 이 벽이 서 있는 한 우크라이나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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