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1일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을 두고 정면 충돌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으로 봉합 수순을 밟았던 신구 권력 갈등이 다시 점화됐다. 이날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준장 진급자에게 삼정검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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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권력이 다시 정면 충돌했다. 이번엔 정부 임기 말 대우조선해양 알박기 인사 논란이 방아쇠를 당겼다. 대통령직인수위와 청와대는 31일 각각 “몰염치한 처사” “자리에 눈독” 등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시간51분 만찬’ 회동을 한 지 사흘 만에 터져나온 파열음이다. 여기에 2차 추경안, 임대차 3법,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등을 놓고 정부와 국회 등 전방위로 전선이 다시 확대되는 모양새다.
포문은 인수위가 먼저 열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10시20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임기 말 부실 공기업 알박기 인사 강행에 대한 인수위 입장’이란 성명을 발표하며 “대우조선해양엔 고통스러운 정상화 작업이 뒤따라야 하고 이는 새 정부와 조율할 새 경영진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문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 동창으로 알려진 박두선 신임 대표를 선출하는 무리수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사회 의결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다지만 사실상 임명권자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한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또 5년 전 정권교체기 인사에 반대한 문 대통령을 언급하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또 하나의 내로남불”이라고 직격했다.
같은 날 윤 당선인이 서울 한국무역협회에서 구자열 협회장에게 정책제언집을 전달받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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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부대변인은 “특히 대통령 동생의 동창으로 지목된 인사를 임명한 것은 상식과 관행을 넘어 직권남용 소지도 다분하다”며 “감사원에 요건 검토와 면밀한 조사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했다. 사흘 전 화합의 상징이라던 봄나물비빔밥에 레드와인이 곁들여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청와대 상춘재 만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인수위가 문제 삼은 건 4조원대 공적자금이 투입돼 산업은행 지분이 55.7%인 대우조선해양의 지난달 28일 경영진 인사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문 대통령 동생인 문재익씨의 대학 동기인 박두선 조선소장(부사장급)을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원 부대변인 회견 이후 네 시간쯤 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입장문을 냈다.
문·윤 만찬서 정말 덕담만? 이철희·장제원도 아직 안 만나
신 부대변인은 “인수위가 대통령 이름을 언급하며 비난했기에 말씀드린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장 자리에 인수위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엔 회사를 빠르게 회생시킬 내부 출신의 경영 전문가가 필요할 뿐 현 정부든, 다음 정부든 정부가 눈독을 들일 자리가 아니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신구 권력 충돌 재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과거에도 대통령과 당선인이 공존하는 권력 교체기에 갈등이 불거지긴 했지만, 이번과 같은 전면전은 전례가 없다. 게다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찬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파열음이 나면서 정부 인수인계 과정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알박기 인사 논란뿐 아니라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관련 제2차 추경 등에서 양측 간 원활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예비비를 두고도 양측의 이견이 완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로선 윤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 뒤 용산에서 집무를 보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임대차 3법을 놓고도 인수위의 폐지·축소 방침에 “교각살우의 우려”(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반발이 나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31일 윤 당선인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 처가 관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등을 겨냥한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다 철회하긴 했지만 “완전히 없었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며 여지를 남긴 것도 꺼지지 않은 갈등의 불씨다.
상춘재 만찬 후 실무협상 채널이 될 거라고 했던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간의 만남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이 당선인과의 만남을 덕담을 나누는 자리라고 했는데 정말 덕담만 나눈 것 같다”고 했다.
양측은 ‘알박기 인사’ 충돌이 파문을 일으키자 확대해석은 하지 말아 달라며 진화에 나섰다. 인수위 관계자는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알박기 인사를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입장을 낸 것”이라며 “용산 이전과 추경, 공기관 인사 등은 계속해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대우조선해양 문제와 이 수석, 장 실장 간 협의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양측 실무협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충돌이 잠잠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 조직개편안이나 새 내각의 인사청문회 등 서로 충돌할 사안이 수두룩한 데다 무엇보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어 여야가 전투 모드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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