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인륜적 침략자' 낙인찍어 국제적 고립 강화
마리우폴 거리 이동하는 친러 반군 |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전쟁 중 '비인도적 범죄'를 고리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대규모로 살해했다는 정황이 짙어지자 이를 '전쟁범죄',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한데 이어 최근 러시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한 의혹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학살과 화학무기는 전쟁 중 벌어질 수 있는 참사의 가장 극단의 형태다.
서방은 이를 부각해 이번 전쟁을 단순히 군사적 대결의 구도가 아닌 러시아를 '반인륜적인 침략자', '전범'으로 낙인찍어 국제적으로 고립하는 여론전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우방은 중국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의 친미 국가와 인도까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압박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도덕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사건은 '부차 학살'이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군이 되찾은 키이우(키예프) 북부 소도시 부차에서 시신 수백구가 발견되면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의혹이 알려졌다.
서방은 이를 전쟁 범죄라고 비판하고 경제 제재를 강화했다.
부서진 러군 전차 수색하는 우크라 병사 |
최근엔 러시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민병대 아조우 연대는 12일 텔레그램에서 러시아군이 드론으로 도시 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사람들이 호흡 곤란과 거동 장애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자신이 이를 공식 확인할 위치가 아니라면서도, 러시아가 마리우폴에서 '화학작용제'를 사용했을 수 있다는 믿을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혀 단순히 의혹 제기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소셜미디어에 러시아군의 화학무기 사용설을 동맹과 확인 중이라며 "(확인되면) 긴장이 고조될 것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 정권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마리우폴 전투에 가담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친러시아 반군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금지된 화학무기 사용은 최악의 비인도적 군사행동의 하나로 실제로 확인되면 서방이 설정한 '레드라인'(한계선)을 넘게 된다는 점에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병력이 직접 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연설에서 "어떤 종류의 물질이었는지 100% 결론짓는 건 아직은 어렵다"며 "포위된 마리우폴에서 전면 조사를 하는 일은 명백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마리우폴 방어군에 화학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한 점, 러시아군이 백린탄을 사용한 점을 고려할 때 세계가 지금 선제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탄 차 안의 민간인 시신 수습하는 우크라 군인들 |
현재로선 화학무기 사용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화학무기 전문가이자 나토 신속대응군의 화생방·핵무기 방어(CBRN) 부대 전직 사령관이었던 해미시 드 브레턴 고든은 영국 BBC방송에 사용 여부를 분석하려면 현지에서 확보한 샘플을 다른 국가에서 조사해야 하지만 이는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생화학 무기 전문가이자 댄 카제타도 영국 일간 가디언에 현재 아조우 연대가 제시한 영상만이 근거인 상황에서 원격으로 사용 여부를 알긴 어렵다고 말했다.
화학무기 감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도 러시아가 마리우폴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온 데 대해 우려스럽다면서도 사실이라고 확인하지는 않았다.
OPCW 내부 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마크-마이클 블룸은 AP통신에 "교전지에서 직원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OPCW가 마리우폴로 조사팀을 보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러시아를 둘러싸고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과거 이력 탓이다.
OPWC는 시리아 내전 중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반군에 화학무기를 여러 번 사용했다고 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화학무기 사용이 확인된다면 서방이 더 강력한 대러시아 제재를 내놓거나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증강해 줄 구실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해설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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