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산청 오일장
달래, 두릅, 고사리, 머위, 쑥, 엄나무순, 오가피순…. 봄날 경남 산청의 오일장은 산골 장터답게 나물이 많았다. 산청장은 날짜에 1과 6이 든 날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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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필자는 먹는 ‘배’가 먼저 떠오른다. 허준과 유희태의 고장이고, 약초와 딸기가 많이 나는 산청이어도 무조건 배가 먼저다. 2001년도였다. 초록마을을 만들면서 산지를 찾아다녔다. 그중 한 곳이 산청에 있는 선돌농원이었다. 지금은 ‘서 있는 돌 농원’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사라진 인증인 저농약인증을 받은 곳이었다. 그 당시는 그 인증도 드물었다. 실제로는 유기농법으로 배를 생산했다. 20년 지난 기억이지만 여전히 또렷하다. 햇빛 따사로운 초가을 오후, 생초면까지만 나 있던 고속도로를 타고 산청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인지라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던 농원. 정부환 생산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배나무가 있던 곳으로 갔다. 어른 허리 높이까지 풀이 자라자 나무와 나무 사이에 평평한 돌을 깔아 풀이 자라지 못하게 해두었다. “풀이 있으면 벌레가 나무에 오를 일이 없어요”하며 나무에서 배를 하나 따서 줬다. “원황입니다. 그냥 드셔보세요.” “배를 안 깎아 먹어요?” 싱긋 웃기만 하며 배를 내밀었다. 서걱서걱할 것 같아 주저하다가 그대로 베어 물었다. 신세계였다. 배 향이 입안 가득 차고 넘쳤다. 수분과 단맛으로 먹던 배였다. 껍질 그대로 먹으니 배 향이 그윽했다. 겨울에 먹는 신고는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지만 원황이나 황금, 한아름 등은 껍질째 먹어야 제맛임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 품종에 따라 맛이 달라짐을 알았다. 당시 식품 MD 생활 6년 차였다. 이후 20년 동안 품종을 구분하려는 내 스타일의 출발점이었다. 산청을 가면서 오랜만에 ‘서 있는 돌 농원’을 제일 먼저 찾았다. 유기농 배 농장과 농부는 여전했다. 서 있는 돌 농원 010-4873-4537
배 농장을 나와 근처에 있는 쏘가리 양식장을 찾았다. 육식성 어종인 쏘가리는 양식이 어렵다. 그래서 자연산이나 중국산에 많이 의존한다. 덕분에 가격은 항상 ‘시가’다. 그런 쏘가리 양식에 성공했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쏘가리 양식은 잉어와 향어 양식을 같이한다. 쏘가리 새끼의 부화에 맞추어 잉어와 향어를 같이 부화한다. 새끼 쏘가리는 사료는 먹지 않고 잉어나 향어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일정 이상 키우면 사료를 먹는다. 쏘가리 양식이 간단하게 보여도 이 방법을 알아내고 안정화하는 데 27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 번은 쏘가리가 바이러스 때문에 전멸에 가깝게 폐사했다고 한다. 다시 횟감 크기로 키우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으로 몇 개월 뒤면 다시 출하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쏘가리 김진규연구소 (055)973-5777
쏘가리 양식장을 나오는데 산청장보다는 지리산 자락이 더 가까운 덕산장이 볼 것이 많다고 한다. 아쉽게도 덕산장(4·9일장)은 어제였다. 지리산의 나물이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나오는 장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오일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산청장(1·6일장)에 맞게 일정을 짰기에 덕산장은 다음을 기약했다. 진주시도 가깝고 해서 산청장 또한 어느 정도는 규모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오판이었다. 산청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지난번에 다녀온 창녕장 길이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조금만 걷다 보면 장터가 끝났다. 실망도 잠시, 산골 장터답게 나물이 제법 많았다. 두릅, 고사리, 머위, 쑥, 달래, 엄나무순, 오가피순 등이 시장에 많았다. 두릅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동행한 허영만 선생님과 친구분은 엄나무순과 오가피순을 사셨다. 내심 풍성한 장터를 바랐지만, 바람만큼은 아니어도 쏠쏠한 구경 재미가 있는 장터였다. 장터를 보면서 한 가지만 찾았다. ‘제피’ 잎만 찾았는데 이유는 전을 부쳐 먹기 위함이었다. 제피 잎으로는 매운탕이나 장아찌를 해 먹는다. 필자는 그중에서 제피전을 가장 좋아한다. 막 부친 제피전의 향긋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가피순과 엄나무순 사이에 한 바구니 담겨 있는 제피, 제피를 사면서 오가피순 또한 샀다. 집으로 돌아와 전을 부쳤다. 나물전은 밀가루 옷이 두꺼우면 안 된다. 밀가루의 질감이 나물의 식감을 방해한다. 나물과 나물이 붙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반죽이면 족하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는 전을 부쳤다. 제피는 향긋하다. 특유의 얼얼하면서 시원한 느낌이 스치듯 지난다. 이런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느낌을 사랑한다. 오가피순은 묵직한 존재감을 내면서 달곰쌉쌀함이 일품이었다. 스쳐 지나는 봄을 잠시 붙잡았다. ‘봄을 부쳤다.’ 계절 음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돈 1만원으로 즐긴 봄이었다.
새햐얀 배꽃이 한창인 ‘서 있는 돌 농원’. 남강이 지나는 산청에는 어탕국수 하는 집이 많다. 48㎞를 달려가 먹을 이유가 충분했던 토종닭숯불구이. 갓 지은 밥에 산나물 듬뿍 비빔밥은 산촌을 찾는 묘미 중 하나다(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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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하면 떠오르는 배를 맛보려 20년 만에 찾은 유기농 농장…입안 가득 그윽한 향 여전
오일장 규모는 작았지만 갖가지 나물 풍성…제피 전의 향긋함,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어탕국수에 제피가루·방아잎은 필수…토종닭은 백숙보다 구웠을 때 제대로 된 맛이 나
남강이 지나는 함안, 산청은 어탕국수 하는 곳이 많다. 금강 주변에도 많지만 그쪽보다는 이쪽을 더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뭘 주고 안 주고의 차이다. 남강 주변은 제피와 방아를 준다. 걸쭉하게 끓여낸 어탕국수에 제피가루와 방아잎이 빠지면 맛은 ‘심심’ 그 자체다. 금강 주변의 어탕국수는 두 가지가 빠져 심심하다. 산청군 신등면 단계에 어부가 운영하는 어탕국수 집이 있다. 꺽지 회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저녁이라면 꺽지와 쏘가리회에 소주 한잔 딱 맞는 곳이다. 점심인지라 회 대신 어탕국수를 주문했다. 삶은 피땅콩이 나왔다. 피땅콩을 볼 때마다 내가 경상도에 있음을 자각한다. 몇 가지 찬이 차려지고 이내 국수가 나왔다. 일단 국물을 맛보고는 조제에 돌입. 제피가루 반 숟가락, 방아잎 많이, 다진 마늘과 땡초 듬뿍. 화한 제피 향이 이리저리 튄다면 방아잎은 조용히 제 할 일을 한다. 우거지 듬뿍 든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 여긴 찾아올 만하다.” 허 선생님과 친구분의 의견이었다. 어탕국수 국물과 어울리는 김치 또한 주연다운 조연이었다. 큰 고기로만 끓인다고 한다. 걸쭉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백조횟집 (055)972-8724
저녁 먹으러 숙소에서 나와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48㎞! 이미 예약을 한 거라 취소를 못하고 굽이굽이 찾아갔다. 가는 사이 일행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았다. 저녁 먹으러 왕복 100㎞는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산으로 올라가던 차는 어느 계곡 앞에서 멈췄다. 어둠이 내려앉은 이런 산골에도 식당이 있을까 싶었지만, 있었다. 사람도 꽤 많았다. 메뉴는 토종닭 구이. 지면을 통해 몇 번 소개했던 메뉴가 토종닭 구이다. 보통 토종닭은 백숙, 닭볶음탕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토종닭은 구웠을 때 제대로 맛이 난다. 먹어본 사람은 말의 의미를 안다. 소금구이 한 마리와 양념 반 마리를 주문했다. 미리 차려진 식탁에 숯불이 들어오고 굽기 시작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었다. 숯불에 굽는 토종닭은 맛있었다. 다만 양념은 소금구이보다 맛이 떨어졌다. 일행은 올 때와 다르게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계곡 옆 물소리가 우리를 지날 때 소주잔이 오갔다. 그렇게 밤은 깊었다. 여기서 사달이 났다.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산청이 아니라 진주에서 온다는 이야기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산청은 대리기사들이 일찍 일을 마친다고 한다. 사는 사람이 줄어드니 대리기사 또한 사라졌다고 한다. 매번 지방으로 다닐 때마다 지방 소멸을 피부로 느낀다. 식사하면서 반주를 곁들인다면 대리기사는 미리미리 불러야 하는 곳이다. 거림계곡펜션식당 (055)972-1061
원래 첫날 점심을 먹으려던 곳이었다. 막상 식당에 도착하니 예약한 손님만 겨우 받는다고 한다. 일하시는 분이 코로나19 확진으로 개점휴업 상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다음날 점심으로 예약하고 갔다. 여기를 선택한 이유는 밥 때문이었다. 여느 식당처럼 미리 담아둔 공깃밥이 아닌 즉석에서 밥을 퍼주는 곳이었다. 게다가 산나물 몇 가지가 찬으로도 나온다. 봄을 즐기기에 딱 맞는 곳이었다. 두부며 전이 나오고 찬이 차려진다. 밥과 시락국이 나왔다. “우리 집은 시락국이 맛있어요.” 주인장의 이야기. 맞았다. 다른 음식 또한 훌륭했어도 시락국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 나물을 넣고 밥을 비볐다. 담근 고추장을 내주면서 1.8ℓ 병을 내민다. 참기름병이다. 어제 짠 건데 손이 바빠 미처 나누지 못했다고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참기름 조금에 온갖 나물 넣고 비볐다. 산나물 비빔밥이라는 게 보통은 묵나물로 많이 한다. 여기도 묵나물이 나왔지만 찬으로 나온 두릅이며, 엄나무를 넣고 비볐다.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안에 넣었다. 봄을 넣었다. 벚꽃은 지고 배나무는 꽃을 피웠다. 꽃이 바뀌면서 또 하나의 봄은 가고 있었다. 지리황식당 (055)973-6395
▶김진영 식품 MD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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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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