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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마해영 배출한 야구부도 9명뿐…저출산에 초토화된 유소년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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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인재강국 ② ◆

매일경제

20일 충북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부 부원 4명이 감독의 지도로 캐치볼 연습을 하고 있다. 이 초등학교는 야구부 부원이 통틀어 4명이라 팀을 꾸려 연습할 수 없다. [청주 =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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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연초등학교 야구부는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인 박정태, 마해영, 손민한 선수를 배출했다. 추신수, 이대호 선수를 배출한 수영초 야구부와 부산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해온 전통의 야구 명문이었다. 이런 대연초 야구부지만 올해 등록 선수는 고작 9명뿐이다. 9명이 뛰는 야구팀을 겨우 꾸릴 정도라 경기 중 투수라도 교체하려면 야수를 구원투수로 올려야 하고 한 명이라도 부상을 당하면 아예 경기를 할 수 없게 된다. 대연초 관계자는 "야구는 팀으로 하는 경기다 보니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저출산의 파고가 유소년 체육을 덮치고 있다. 특히 팀 스포츠는 팀을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01년 이후 22년 연속으로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의 수)이 1.3명을 밑돌았다. 인구학자들은 이를 두고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하는데 이 단계로 들어가면 인구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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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비교적 인기 종목이지만 사실상 초등학교 단계에서 유소년 야구는 급락세로 접어들었다. 한국리틀야구연맹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유소년 야구 선수는 꾸준히 늘어 2016년 3615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급감하기 시작해 지난 3월 기준으로 2172명까지 줄었다. 불과 6년 사이 39.9% 급락한 수치다. 제주도처럼 아예 유소년 야구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지자체도 등장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지역에 소재한 프로팀은 수도권 출신을 뽑아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스포츠는 과학이나 비즈니스와 달리 몇 살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기량이 결정되는 분야인데, 현재 상황이라면 사실상 10년 안에 대부분의 종목이 '초토화' 수순에 진입한다고 예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들어 한국의 올림픽 메달 수가 줄어드는 데는 저출산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계올림픽의 경우 한국 메달 숫자(금, 은, 동 합계)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32개를 기록한 뒤 꾸준히 줄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20개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선수 지망생이 줄어든 것을 넘어 경쟁 자체가 줄고 이는 곧바로 동기 유인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 스포츠는 초·중·고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엘리트 체육인을 육성하는 구조"라면서 "경쟁이 사라지면 그만큼 뛰어난 선수가 나타날 확률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비인기 종목에선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강원도 지역 초등학교 컬링 대표팀의 경우 2명이 지원해 2명이 합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교육부 관계자는 "충청북도 지역은 체육중학교 개교를 추진했지만 학생을 모을 수 없어 설립을 보류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체육계는 저출산이 20년 넘게 지속된 만큼 나름의 대비책을 세우고 있어 주목을 끈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했던 '승자 독식 엘리트 육성'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 각각의 재능에 주목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별도로 전일제 유소년 체육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고 다양한 스포츠를 여가 활동으로 장려하는 가운데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전남교육청에 따르면 전라남도는 학령인구 감소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2023년까지 초등학교 운동부를 스포츠클럽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초등생이라면 누구라도 일과를 마치고 참여해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합숙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스포츠 전반의 저변을 넓히면 흥미를 느껴 진로를 정하는 유소년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준혁 양준혁야구재단 이사장은 "출산율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스포츠 자체의 인기를 되살려 선수층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및 이주민 출신들이 스포츠를 통해 한국에서 적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특유의 '순혈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 사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 출신 이주 여성 스롱 피아비 씨(32)는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뒤늦게 당구에 흥미를 갖고 노력해 3쿠션 부문에서 랭킹 1~2위를 다투고 있다. 농촌 지역의 체육중학교에는 다문화 가정 출신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한국은 육상 등과 같은 기초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다양한 인종이 섞이면 스포츠 경쟁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체육중학교 관계자는 "앞으로 다문화 가정 출신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벌써 일부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 박나은 기자 /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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