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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美 총기난사 범죄 ‘에피데믹’에 비유한 바이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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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뜻하는 팬데믹과 달리

에피데믹은 특정 지역·국가에만 퍼진 감염병

바이든 "이런 범죄 다른 나라에선 안 일어나…

왜 미국인만 이런 학살과 함께 사느냐" 개탄

세계일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군인 가족들의 노고를 기리는 연설을 하기 전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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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총기 범죄라는 ‘에피데믹’(epidemic·유행병)과의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인 독립기념일(7월4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 인근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참극에 격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반응이다. 총기 범죄를 유행병에 비유한 점이 눈길을 끈다. 총기 규제는 여성의 낙태 제한과 더불어 오는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시카고 총기난사와 관련해 “질(영부인)과 나는 하필 독립기념일에 미국 공동체를 또 슬픔 속에 몰아넣은 무분별한 총기 범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당시 피해자 구조에 앞장선 사람들, 용의자를 검거한 사법당국 관계자 등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오전 10시20분쯤 시카고 교외 하이랜드파크에서 독립기념일 축제 퍼레이드 도중 총기난사로 최소 6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인근 건물 옥상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하던 군중을 향해 총을 무차별 난사한 용의자를 특정해 추적한 끝에 붙잡았다. 검거된 이는 22세의 백인 남성 로버트 E 크리모 3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미국 연방의회는 지난 5월 어린이 19명을 비롯해 21명이 목숨을 잃은 텍사스주 유밸디 총기 참사를 계기로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을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적 지지 속에 통과시켰다. 이 법률은 정신질환 경력자나 전과자 등의 손에 총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총기 구입 희망자들을 상대로 철저한 검증을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런데 총기 규제 강화법이 시행되자마자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생일’에 해당하는 독립기념일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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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현지시간) 시카고 교외 하이랜드파크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출동한 연방수사국(FBI) 요원과 주방위군 장병 등이 민간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하이랜드파크=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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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의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최근 총기 규제 강화법에 서명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고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기 범죄라는 에피데믹과의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팬데믹(pandemic)은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가 되었다. 팬데믹은 전 세계에 퍼진 감염병을 뜻하며 코로나19, 2009년의 신종플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팬데믹과 달리 에피데믹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만 유행하는 감염병을 의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부터 총기난사를 ‘유독 미국에서만 자주 일어나는 범죄’라는 뜻에서 에피데믹이라고 불러왔다.

지난 5월 유밸디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아주 지긋지긋하다”며 “이런 종류의 총기난사 사건은 세계 다른 나라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총기 규제에 소극적인 공화당을 겨냥해 “왜 우리 미국인들만 이 대학살과 함께 살려고 하는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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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DC=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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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가 미국만의 에피데믹이란 주장은 통계 수치로 입증된다. 얼마 전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유럽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이런 범죄는 아주 드문 게 현실이다. 반면 미국은 올해 들어 지난 3일까지 총 306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 사법당국은 총을 쏜 사람을 제외하고 4명 이상이 총에 맞아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을 ‘총기난사’(mass shooting)로 규정한다. 같은 기간 총기 범죄 사망자는 무려 1만72명에 이른다. 이쯤 되면 웬만한 유행병보다도 치사율이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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