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세계 정상들 이모저모

"세계 최고 자리서 물러나 슬퍼"…존슨 英총리, 결국 불명예 사퇴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7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후임 총리 선출을 위한 경선이 열릴 예정인 10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AP = 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스캔들로 사퇴론이 제기되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결국 취임 3년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취임 이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코로나19 등 위기를 잘 넘겨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말 불거진 '파티게이트'로 큰 타격을 입은 뒤에도 성비위 인사를 요직에 앉혔던 사실이 발각돼 영국민과 동료 의원들의 신뢰를 잃은 결과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응에 앞장서고 브렉시트 후 유럽연합(EU)에 각을 세우면서 지지층 결속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존슨 총리는 7일 낮 12시 30분께(현지시간)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며 "새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따라서 새 총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수당의 의지"라며 총리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지금부터 새 리더를 선출하는 과정이 시작돼야 한다"며 후임자 인선 일정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도 "새 리더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사퇴는 하지만 후임이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존슨 총리는 총리직 사퇴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는 "지난 며칠간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도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매일경제

존슨 총리는 전날 밤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각 붕괴 위험론까지 제기되자 결국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 등 각료 의원 수십 명이 잇달아 내각에서 탈출했고 남은 장관들도 존슨 총리에게 투표로 쫓겨나기보다 자진해서 사퇴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틀 전 임명된 나딤 자하위 재무부 장관과 미셸 도닐런 교육부 장관마저 등을 돌렸다. 일부 의원들은 존슨 총리가 사임을 거부하자 영국을 헌법적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존슨 총리가 결국 사퇴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그는 취임 3년도 채 안돼 불명예 퇴진하는 영국 총리가 됐다. 지난달 보수당 신임투표를 가까스로 통과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신임투표를 통과하긴 했지만 당내에서 보수당 신임투표 규정을 바꿔서 재투표하자는 압박은 계속됐다. 전임 테리사 메이 총리 역시 신임투표 통과 후에도 동료 의원들의 신뢰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 재차 신임투표가 추진되자 물러난 바 있다. 당시 메이 전 총리를 내쫓는 데 앞장섰던 존슨 총리가 같은 처지가 된 셈이 됐다.

존슨 총리는 2019년 7월 취임 이래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등 위기에 잘 대처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말 불거진 소위 '파티게이트'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당시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역 규정을 어기고 총리실 등에서 음주 파티를 벌인 일이 발각됐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내놓은 발표들이 거짓말 논란을 부르면서 사퇴 여론이 고조됐다.

도덕성 허점이 드러나 영국민과 동료들의 신뢰를 잃은 가운데 성비위 인사를 요직에 앉히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말을 바꿔 또다시 거짓말 의혹이 생긴 게 결정타가 됐다. 여기에 최근 인플레이션에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 조짐이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존슨 총리는 후임이 뽑히기까지 관례상 온전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는 이날 영국민에게 "새 총리가 취임할 때까지 국익에 봉사할 것이고 정부는 계승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지지 기반을 상실한 식물총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보수당은 이번 여름 경선을 치르고 10월 초 당대회 전에 새로운 총리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존슨 총리가 사퇴함에 따라 자연스레 후임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BBC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존슨 총리 뒤를 이어 보수당을 이끌 당대표로 과거 존슨 총리와 경쟁했던 제러미 헌트, 사지드 자비드를 비롯해 마이클 고브, 페니 모돈트, 리시 수낙, 리즈 트러스, 벤 월리스 등 전·현직 각료들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에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다른 내각제 국가들과 비교해도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집권 여당인 보수당의 대표가 사퇴하면 선거를 통해 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서 신임 대표를 선출하게 되는데, 후보는 동료 의원 8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복수의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히면 보수당 의원들은 1차로 5% 이상(현재 의석대로라면 18명), 2차로 10% 이상의 지지를 얻은 후보를 걸러낸 다음 최하위 득표자를 탈락시키면서 두 명의 후보자만 남을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 두 명의 후보자 가운데 최종적으로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의원들뿐만 아니라 전국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한다.

당대표로 선출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를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을 구성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현 의회의 임기가 2025년 1월까지기 때문에 신임 총리가 총선을 실시할 필요는 없으나 판단에 따라 조기 총선이 실시될 수도 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