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
금융 당국이 125조원을 들여 소상공인·청년 등 취약층의 빚 상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오는 9월 말 종료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 지원 조치도 은행이 자율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큰 손실을 본 저신용 청년층을 구제하는 방안도 담았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 부문 민생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이 내용은 14일 윤석열(얼굴) 대통령이 주재한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에서 보고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민간 부채가 많이 늘어난 상황 속에서 금리가 빠르게 상승함에 따라 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추가 지원 대책을 계속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고물가·고금리 부담이 서민과 취약계층에 전가되지 않도록 관계 기관은 각별히 신경써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금리 인상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로 인한 가파른 이자 부담 등이 고스란히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은 금리 상승기를 맞아 금융 지원 대책의 틀을 ‘부채 상환 유예’에서 ‘이자 부담을 줄이는(상환 부담 경감)’ 방향으로 바꿨다. 코로나19 기간에는 만기연장·상환유예와 정책금융 대출 등을 통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돈줄이 막히지 않는 데 초점을 뒀다.
금융위는 오는 9월 말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 지원 조치 종료 후 급격한 대출 회수가 없도록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 도입을 검토한다. 만기연장·상환유예 중인 자영업자가 신청할 경우 은행 자율적으로 신청자의 90~95%는 해당 조치를 연장해 주는 내용이다. 부실 위험이 높은 차주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차주가 만기연장 조치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추가 만기연장도 힘든 자영업자, 대출원금 최대 90% 감면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2차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한 뒤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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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금융권에선 만기연장이 장기화하면 잠재 부실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위가 일괄 재연장 대신 은행이 자체적으로 부실을 솎아내는 방향을 택한 이유다. 김 위원장은 “부채 문제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회사에 있다”며 “금융회사가 부실 우려가 있으면 정부 쪽으로 넘겨 정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무늬만 종료’ 일 뿐 사실상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반발의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재연장해 주는 게) 90~95% 수준이면 차라리 공식적인 재연장이 낫다”며 “향후 부실 발생 시 금융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가 만기연장 등을 받지 못할 만큼 상황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는 원금의 최대 90%까지 감면해 주는 채무 조정 절차를 밟게 된다. 3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새출발기금을 통해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대상이 되는 자영업자는 최대 1~3년간 부채 상환을 유예받고 원리금은 최장 20년간 나눠 갚을 수 있다.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차주는 최대 60~90% 수준의 원금 감면도 받는다. 다만 재산의 청산가치만큼 채무를 상환한 후 남은 원금에 한해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이 밖에 자영업자가 제2금융권 등 비은행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은 연 7% 이하의 금리로 대환해 준다. 현재 제2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금리는 연 15~16% 수준이다. 리모델링과 사업 내실화를 위한 자금 42조2000억원을 지원한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에 대한 이자 감면도 있다. 주택 관련 대출은 대출 규모가 큰 데다 변동금리를 택한 경우가 많아 금리 상승에 따라 상환 부담이 많이 늘어난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은 올해 25조원과 내년 20조원으로 모두 45조원이 공급될 계획이다. 올해 9월부터 주택 가격 4억원 이하이고 부부 합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저소득 대출자를 대상으로 시행한다.
대출금리는 신청 시점의 보금자리론 금리에서 0.3%포인트를 빼면 된다.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만 39세 이하 저소득 청년층에는 추가 우대금리(0.1%포인트)를 준다. 7월 보금자리론 금리(연 4.6∼4.85%) 기준으로, 저소득 청년층은 연 4.2∼4.45%의 금리를 적용받는다. 주택금융공사 전세대출보증 한도는 기존 2억원에서 4억원으로 늘어난다. 전셋값 상승에도 보증 한도가 장기간 2억원에 묶여 있어 부족한 보증금을 신용대출 등으로 조달하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빚내서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청년층의 재기도 돕는다. 우선 9월 하순까지 신용회복위원회에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존 제도에서는 신청 자격이 없는 연체 전 단계라도 이자 감면과 상환 유예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상에 선정되면 이자를 최대 30~50% 감면해 준다. 금융위는 최대 4만8000명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원의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개인의 ‘빚투’에 대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위원장은 “운영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안효성·현일훈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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