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법의 심판대 오른 MB

이명박 "금리인상 불가피, 1년만 견디자"…역대 대통령이 본 한국은행 어땠나 [대통령의 연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지금 문재용 기자의 기자페이지를 '구독'(구독 바로가기)하시면 발 빠른 정치뉴스와 깊이 있는 연재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제1차 비상경제대책회의 7(2009)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기준금리를 0.5%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했습니다. 기준금리 결정은 국내 모든 경제 주체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는데요, 이번처럼 금리를 급격히 올릴 경우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각종 대출 금리가 오르고 경기 침체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아무래도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기준금리가 높을수록 고통스러운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기준금리 변동의 여파가 큰 탓에 정치권에서도 각자 입장에 따라 기준금리의 상승·하락을 반기거나 안타까워하기 마련입니다. 지지도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여권에서는 기준금리라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여건이 만들어지길 바랄 테고요. 내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천천히 올려주길 바라는 여권 정치인도 여럿 있을 겁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정권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다면 이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경제를 좌우할 통화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1997년에 이르러서야 중앙은행의 독립이 제도화된 것을 감안하면 이전까지는 통화정책이 정권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문을 통해 한국은행의 위상 변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 "재무장관과 갈등 빚은 한국은행 총재 경질"

과거 한국은행 총재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연설이 있는데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6년 김유택 전 한국은행 총재를 경질하면서 내놓은 '한국은행 총재 경질에 대하여'란 연설문입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김유택 한국은행 총재는 여러 해를 은행장으로 잘 봉공해왔는데 근자에 와서 재무부 장관과 은행장 사이에 서로 의견이 합하지 못한 관계인지 신문상에 정부 위신에 관계되는 언론이 발표된 것을 그저 방임할 형편도 못 된다"며 "김유택 총재는 얼마 전에 그 임기가 차서 사명하게 된 것을 내가 임시로 더 보라고 했던 것이므로 지금 은행장을 사임하고 좀 쉬는 것이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정돈시키는 데도 편리하겠으므로 이 사면을 받고 그 대신으로 김진형 농업은행장을 다시 내는 것"이라 밝혔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설문 중에도 중앙은행 독립성에 관한 부분이 있습니다. 1993년 동아일보 창간 73주년 특별회견에서 기자로부터 '조순 한국은행 총재 경질 등이 정치적 보복 내지는 정치적 인사 조치라는 시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많은 사람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백악관의 보좌진 전원과 행정부의 부국장급 이상 간부 거의 전원이 바뀌지 않았나. 이런 것을 두고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독립

한국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이 이뤄진 것은 1997년 한국은행법이 개정되면서부터입니다. 이전까지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도 재정경제원 장관(현재의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는 등 한국은행 운영의 대부분을 정부가 관할하는 구조였는데요. 재정경제원 장관에게 한국은행 부총재와 부총재보 등의 인사권과 업무 검사 권한, 예산권 등이 주어져 있었죠. 1997년 법 개정을 통해 이 같은 권한이 한국은행 총재에게 넘어오게 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같은 한국은행 독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고, 1995년 동아일보 창간 75주년 특별회견에서도 관련 질의가 오갔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기자로부터 '중앙은행 독립은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대립하고 있고 여야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중앙은행 독립은 어떤 것인가'란 질문을 받았는데요. 아마도 공약 이행이 지지부진한 점을 지적했던 질문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현행법 아래서도 중앙은행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이며 이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운영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신장시키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여지를 뒀습니다. 2년 뒤인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이 이뤄지며 김 전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된 셈이지만,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의 의중보다도 IMF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한 터라 마냥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은 사안입니다.

이명박 "한국은행 금리인상 부담이지만 불가피"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에서 한국은행이 등장하는 대목을 살피다 보니 현재 상황과 굉장히 유사한 언급이 있어 소개합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yahoo.com과 진행한 인터뷰인데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가 겹쳐 기준금리가 어느 한쪽으로 맘 편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우리 정부의 정책은 물가를 억제하는 데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국민에게 한 1년 정도 이상, 힘들지만 함께 견뎌 나가자는 부탁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문제는, 금년 들어와서 한 번도 인상이 되지 않았다"며 "그래서 이번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이후로도 악화 일로를 걷고 결국 한국은행은 엄청난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되죠. 요즘도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지만, 경기 침체가 가시화될 경우 억지로 금리를 올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받는 대통령조차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경제 흐름인 만큼, 금리 추이를 예측해 투자를 하려면 반드시 관련 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재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