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대피할 시간 있었지만... 故현은경 간호사, 마지막까지 환자 지켰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일 경기도 이천시의 4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나 이 건물 4층에 입주해 있던 신장 투석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숨졌다. 또 병원 환자 등 44명이 연기에 질식하는 등 중경상을 입었다.

조선일보

지난달 전남 구례군에서 군복무 중인 아들 장호현(21)씨를 면회하러간 간호사 현은경(50)씨와 가족들. 왼쪽부터 딸 장지현(25)씨, 아들 장호현씨, 현은경씨 본인, 위에 남편 장재호(53)씨. /유가족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망한 환자 4명은 혼자서 거동이 원활하지 않은 고령자였다. 숨진 간호사인 현은경(50)씨는 달랐다. 그는 나이도 젊고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연기가 자욱한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그는 투석 중인 환자들의 몸에서 투석기를 떼내는 등 마지막까지 홀로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을 돌보느라 제때 병원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도 “이 병원에서만 오래 일한 성실한 동료였다”며 울먹였다.

현씨는 지난 20년간 간호사로 묵묵히 일하며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워 왔다. 평소 본인이 힘든 순간에도 내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그는 사고를 당한 이 병원에서만 15년을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일 자신의 아버지의 팔순 잔치가 열리기로 돼 있어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돼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하루 앞두고 변을 당한 것이다.

이날 오후 4시 이천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씨의 남편 장재호(53)씨는 계속 흐느끼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사고가 나고 1시간이 지난 후 동료 간호사로부터 현씨가 화재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내의 시신을 확인한 후 “계속 자는 것 같은데 일어나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그는 “평소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위험한 장난도 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왔던 사람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자녀들도 이날 장례식장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현씨의 아들은 전남 지역에서 현재 군복무 중이다. 현씨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할아버지 팔순 잔치를 계기로 지난 4일 휴가를 나와 있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이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중 비보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아들 장씨는 “어머니는 간호사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불만을 말한 적도 없고,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얘기를 들어주는 천사 같은 어머니였다”고 전했다. 딸 장지현(25)씨는 20년을 간호사로 살며 다른 사람을 도왔던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소한 일 때문에 투정 부려도 항상 받아주던 최고의 어머니였다”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었는데 이렇게 무표정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진다”고 전했다.

장재구 이천소방서장은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던 상황으로 보여 숨진 간호사는 끝까지 환자들 옆에 남아있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광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