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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윤덕민 대사 “日기업 자산 현금화땐 수백조 사업 기회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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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피해’ 외교적 해결 강조, 日 보복땐 양국 최악상황 우려

“법원이 현금화 조치 동결해야”

윤덕민 신임 주일대사가 8일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 문제를 풀어낼 ‘외교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외교적 해결을 위해 한국의 법원이) 현금화 조치를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사는 이날 일본 주재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현재 징용 피해자 소송 건은 일본 기업의 자산이 법원에 압류된 상태이고, 현금화의 마지막 단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들 사이에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할 경우 일본 측이 ‘자국 기업의 재산 보호’라는 명분으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이는 양국 관계에 최악의 상황을 몰고올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됐다.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한 징용 피해자 문제는 국내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잘못을 인정,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자발적 배상을 하지 않았고 일본 기업이 보유한 한국 내 자산을 압류, 조만간 경매 등에 부칠 예정이다. 자산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피해자에게 배상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은 “징용 피해자 배상은 한·일 청구권 협상 때 모두 해결된 문제”라며 “한·일 조약이 국제법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대사는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되면 피해자 개인의 권익에 이익일까, 조금 다른 생각도 한다”며 “압류 중인 자산이란 게 브랜드나 특허와 같은 건데, 경매에서 충분한 현금화가 되지 않으면 피해 당사자들이 보상받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보상 측면에선 굉장히 작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윤 대사는 과거 정부의 책임론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그는 “일제시대 많은 피해자들이 한·일 국교 정상화에서 피 맺힌 한을 풀지 못했고, 청구권 협정에선 그분들에게 돌아갈 몫을 국가가 써버린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가 외국과 조약에서 개인의 이익을 침해했으니, 정부가 일정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됐다.

하지만 “외교적 노력으로 풀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질문에는 “많은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면서 “피해자 분들에게 가장 이익이 큰 방향으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사는 “(주일 대사) 신임장 받을 때 윤석열 대통령께서 하루라도 빨리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막상 일본 와서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본의 냉랭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한국의 새 정부 등장에 일본 측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인 만큼, 이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일은 전략적 이해관계가 가장 일치하는 나라”라며 “유엔에서 이뤄진 각종 결의안의 찬반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한국과 일본은 98%의 일치율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도 98% 안 나올 텐데, 그만큼 한국과 일본이 이해 관계나 가치관이 거의 일치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전략적 이해는 같지만 역사, 영토, 감정의 문제, 국민성의 차이 등 지뢰들도 많다”며 “지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 지뢰를 가급적 많이 피하면서 앞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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