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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의사 수 증원은 오답"…의협,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에 입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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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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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 부족이 문제다" vs "필수의료 분야가 소외되는 저수가(낮은 진료비) 체계가 문제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맡을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두고 의료계 내부 의견이 엇갈린다. 간호계는 "의사 수 부족 탓에 간호사가 운명을 달리하게 됐다"는 입장인데 의료계 최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까지 "의사수 증원은 오답"이라며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간호계가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한 '의사 수 부족'을 해결하려면 필연적으로 의사 인력이 확대돼야 하는데 이는 의사단체가 격렬히 반대하는 이슈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년전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방안을 발표하자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거부 사태까지 빚어졌을 정도다. 올해 간호법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단체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 화약고 격인 의사 수 확대 이슈까지 갈등의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을 내고 "의사수 증원은 오답"이라며 "무작정 의사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 부족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왜곡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늘린 그만큼 미용분야 등 비급여·저위험 분야의 의사와 해당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핵심은 전체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분야, 필수과의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 주요 사망률 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등으로 현행 기피과가 이에 해당되지만, 매년 필수 진료과목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는 반복된다"며 "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전문의를 비롯해 지원 의료인력이 전반이 부족하여 규모가 큰 병원이라 할지라도 극소수의 인원이 돌아가며 365일 전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필수의료 분과의 지원과 진료를 기피하게 되고, 점점 해당 전문의가 고갈되다보니 소수의 전문의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제도개선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적정한 수가개선과 진료여건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인요소와 기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이라는 간호단체 의견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낸 것이다. 앞서 대한간호협회는 추모글을 통해 "국내 초대형 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받지 못해 발생한 죽음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운 중대한 사건"이라고 짚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대한간호협회와 마찬가지로 의사 수 부족 자체를 원인으로 꼽았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사건 관련 성명을 통해 "의사인력 부족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원내 직원 응급수술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협회는 관련 논란에 맞대응하지 않기로 당초 입장을 정한 바 있다"며 "금번 사건을 계기로 공공의대 등 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거나 의사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등 사건의 본질보다는 고인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행태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우리협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이번 사건을 건전하지 못한 의도로 왜곡하며 변질된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에 입장과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개선 방향을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간호단체가 지적한 '의사 수 부족' 이슈는 직역별 갈등의 '화약고'로 통했다. 해당 이슈로 비롯된 갈등의 대표적 사례가 2020년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거부 사태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통해 2022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총 4000명 늘리고, 그중 3000명을 지역 의료인력으로 양성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이 집단 반발했고,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의사들의 이같은 격렬한 반대에 정부는 결국 추후 논의하기로 하고 물러섰다. 일단 해당 이슈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셈이었는데 이번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이 이슈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의사 단체는 의사수 부족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한 간호사 단체와 간호법을 두고도 이미 격렬히 부딪친 상태다. 의사 단체는 현행 법 체계 테두리에서 간호사들의 처우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어, 간호사들만을 위한 법을 따로 제정할 필요가 없다며 대규모 집회를 열고 각 협회장들이 삭발에 나섰다. 이 같은 갈등 양상에 이번 사건이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의료계 갈등 양상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정부는 이날 서울 시티타워에서 의료계, 전문가들과 만나 최근 발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경위를 청취하고 향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간호협회 및 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신경과학회·대한응급의학회 전문가들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국민이 어느 지역에 있더라도 적절한 진료와 수술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필수의료 인력 및 관련 인프라 확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이천시 의원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획기적으로 경감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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