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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반지하부터 삼킨 재난에 잇단 참변 “인사성 바르고 똑똑한 손녀였는데” “고지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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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림동 반지하 침수돼 발달장애인 등 3명 고립 사망

상도동서도 반지하 주민 1명 숨져…취약가구 피난책 마련 지적 잇따라

세계일보

지난 9일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이 물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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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바로 앞에 싱크홀이 생기더니 거기서 물이 용솟음쳤어요. 정말 순식간에 물이 반지하 천장까지 들어차더라고요. 몇 초도 안됐던 것 같아요. 주민들 몇 명이 방범창을 뜯고, 창문을 깨보려 했는데 수압 탓에 도저히 힘으로 할 수가 없었어요. 이 집 손녀가 인사성도 바르고, 똑똑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가버린 것 같아 미안합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많이 있었으면, 조금만 더 빨리 도왔으면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으로 남네요.”

기록적인 재난은 취약계층을 가장 먼저 덮쳤다. 지난 8일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이 사망한 데 이어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에 살던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상태였다. 침수 우려가 높은 지역의 반지하 가구에 긴급 피난책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일 오후 3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창문 안에선 소방호스 4개를 통해 물이 꿀렁꿀렁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16시간이 넘는 양수 작업에도 지하주차장과 집 안에 들어찬 물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해당 빌라에 거주한다는 한모씨는 물이 들어차 엉망이 된 반지하 집을 바라보며 “10년 가까이 부대끼며 살았던 이웃이 한순간에 이런 변을 당한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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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이 지난 9일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 양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싱크홀이 발생한 땅은 천으로 덮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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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12시26분 신림동 한 빌라 반지하에서 40대 여성 A씨와 여동생인 40대 여성 B씨, B씨의 10대 딸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A씨는 지적장애인이었으며 주민센터에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초 신고는 전날 오후 9시쯤 이뤄졌다. 폭우가 쏟아지자 B씨는 지인에게 침수 신고를 요청했고, 지인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지하엔 자매의 모친까지 총 4명이 거주해 왔으며 사고 당시 모친은 병원 진료로 외부에 있어 화를 피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주택 내에 폭우로 물이 많이 들어차 있어 배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배수 작업 이후 이들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의사 검안을 진행한 결과 사인을 익사로 추정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다던 주민 김모씨는 “도로 전체에 물이 들어차 소방차가 들어오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며 “물이 천장까지 들어찬 지 몇 시간 후에야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간대 폭주한 폭우 신고 탓에 경찰과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신고 30여분이 지난 후였다. 결국 밤 11시쯤부터 자정 사이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소방관들이 장비로 방범창을 뜯어 상황을 수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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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있다. 해당 주택은 지하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어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면 창문과 출입구 계단 등으로 유입된 물이 차올라 집이 잠기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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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인근에 반지하 구조가 많아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될까 무섭다”며 “해마다 폭우로 반지하 침수 사고가 반복되는데 개선책은 없는 것이냐”며 입을 모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지난 8일 밤 10시10분쯤 반지하에 물이 들어찬 뒤 빠져나오지 못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동작소방서는 “저녁 8시27분께 집에 물이 차 언니가 갇혀있다는 여동생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밤 10시10분쯤 주검을 수습했다”며 “당시 동작구 관내 일대가 침수로 인해 이동이 어려워 현장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전했다. 숨진 여성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었다.

반지하를 삼킨 폭우에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고 당일부터 내렸던 비로 서울 남부권에 침수 피해가 집중됐는데 이 중 특히 반지하 및 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호우에 따른 서울 지역 사망자 5명 중 4명은 반지하에 거주하던 이들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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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집이 침수되자 인근 주민들은 지난 9일 동작구민체육센터로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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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대피시설인 서울 동작구민체육센터에서 만난 박모씨는 “집에 물이 차 당장 쉴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을 찾았다”며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반지하에 사는데도 침수됐다”고 전했다.

대방동에 거주한다는 이모씨도 “고지대 1층에 거주하는데 도림천이 넘쳐 집이 쑥대밭이 됐다”며 “1층도 이 난리가 났는데 지하에 거주하는 이들은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집중호우 때마다 도심 지역 등에서 반지하에 피해가 몰리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지만 침수 피해 방지 및 주거 개선 속도는 더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물막이판 등을 공동주택이나 개인이 신청하면 지원해 주고 있긴 하다”며 “현재까지 폭우 긴급 지원책이 마련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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