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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드 '감정싸움' 자제하고 '팩트'부터 체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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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감정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사드 배치와 운용은 주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중국과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중국은 기존의 '3불(不)'에 더해 '1한(限)'까지 들고 나왔다.

중국의 '3불1한'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등을 추구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윤석열 정부도 준수하고, 사드 운용에도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와 대다수 국내 언론은 중국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어섰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껄끄러워진 한중관계가 사드 논란 격화로 회복 불능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되는 까닭이다.

프레시안

▲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사드와 관련해 3불(不)-1한(限) 정책을 선서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선서'(宣誓)는 '선시'(宣示, 대외적으로 널리 알림)로 바뀌었다. ⓒ중국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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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냐 합의냐?

이럴 때일수록 한중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실관계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3불' 입장 표명이 '협의'였는지, '합의'였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 "협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이에 따라 3불 입장을 번복해도 "약속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중국은 '협의(協議)'라는 같은 한자를 쓰면서도 이를 '합의'라는 뜻으로 간주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사드 3불 입장과 관련해 "달성협의(达成协议)"라고 밝혔는데, 이는 "합의를 달성했다"는 취지로 표기한 것이다. 영문판에 "reached agreement(합의를 달성했다)"라고 표기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이것이 팩트이다. 중국이 협의를 합의로 둔갑시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3불을 약속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국에선 협의가 의논을 뜻하는 반면에, 중국에선 문맥에 따라 합의도 뜻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3불은 박근혜 정부 때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국이 '1한'을 들고 나온 이유는?

그럼 '1한'은 또 뭘까? 중국은 한국 정부가 3불은 물론이고 1한도 선시(宣示), 즉 "널리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국내에선 중국이 사드의 운용 제한까지 요구하고 나섰다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이면합의를 해준 것이 아니냐는 정치공세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팩트가 있다. 2017년 10월 31일에 한중 양국은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문재인 정부가 밝힌 입장에는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 입장은 새로운 것도 문재인 정부의 독자적인 입장도 아니다. 사드 배치 결정의 주체인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이고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도 줄곧 강조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즉, 사드는 오로지 북한을 상대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한미의 공식 입장이자 국내 대다수 언론이 주장한 바였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분명한 팩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묘하고도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으려면 사드 레이더의 운용제한이 필수적이다. 사드 레이더를 '종말 모드'를 넘어 '전진 배치 모드'로도 운용하면 미국의 글로벌 MD에 통합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1한 주장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컨대,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북한을 감시하는 'CCTV'뿐만 아니라 중국의 미사일을 탐지·추적해 다른 MD 자산에 전송하는 '몰카'로도 운용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사드 배치 당시 한미가 그럴 일이 없다고 밝힌 것을 1한으로 간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번지수 잘못 짚은 한중

한중간의 사드 갈등을 보면 양측 모두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사드 운용 주체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보다는 한국을 상대로 '3불 1한'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운전자가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행선지를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해서는 언성을 높이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 결정 당시 명확하게 밝힌 입장은 오로지 북한을 상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거꾸로 미국이 레이더를 '몰래카메라'로도 이용하면 한미동맹 차원의 결정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권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상호 존중"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들 두 가지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우선 '3불 1한'을 둘러싼 해석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접점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동시에 미국과의 양자 대화, 혹은 한미중 3자 대화를 통해 사드가 한중, 미중 관계 악화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협의할 필요가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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