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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땅에 딱 붙은 쇠창살 반지하는 ‘하늘’과 너무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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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

폭우 침수로 3명 목숨 앗아간 신림동 반지하

구급대 못 뜯은 전체 방범창, 구조대 와서야 뜯어

“침수 걱정으로 방범창 없는 일상위험 감당 못해

결론은, 반지하에 사람이 살아선 안 된다는 것”


한겨레

폭우로 고립돼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창문 주변을 2022년 8월9일 이웃 주민이 살피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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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9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ㅈ빌라 앞, 지친 얼굴의 소방관들이 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주변으로 우산을 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집이라며.” “아이고 불쌍해서 어떡해.” 지나가던 사람들도 완전히 물에 잠긴 반지하 두 집과 지하주차장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뜯겨나간 방범용 쇠창살 옆으로 이곳에 살던 이들의 물건이 널려 있었다. 오렌지색 책가방, 짙은 초록색 핸드백, 곰돌이 동전지갑, 라면, 김치통. 북극곰 캐릭터가 그려진 어린이용 사인펜 위에는 물건 주인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다. ‘홍○○’. 이 집의 가장이던 둘째 딸 홍아무개(47)씨의 한 살 위 언니 이름이다.

반지하에 있는 이 집에는 홍씨의 어머니(72)와 다운증후군 장애인 언니(48), 홍씨의 딸(13) 등 넷이 함께 살았다. 폭우가 쏟아진 8월8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시간당 강수량은 141.5㎜로, 115년 만의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 홍씨의 집은 신대방역에 가까웠다. 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를 제외한 세 사람은 8월9일 새벽 12시26분, 12시48분, 1시20분, 차례로 목숨을 잃은 채 집 안에서 발견됐다.

몰려든 사람들 틈으로 젊은 남자가 팔을 뻗었다. “비켜주세요. 여기 선 지켜주세요.” 시의원, 관악구청장, 서울시장, 대통령이 연이어 도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장에서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 “근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 누리집에는 고인이 된 홍씨의 반지하 집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카드뉴스 형식으로 올라왔다. 사진에는 ‘침수피해 현장점검. 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참사 현장을 국정 홍보를 위한 구경거리처럼 보이게 했다는 비난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다음날 오후 이 게시물을 내렸다.

“창살을 아무리 뜯어내려고 해도 안 됐다”


이날 빌라 건너편에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박혜진(35)씨가 유독 허망한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산을 썼는데도 그의 몸은 살짝 젖어 있었다. 그는 이 빌라 2층에 사는, 홍씨 가족의 이웃이었다.

“(홍씨 언니가)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누구라도 빠져나올 수 없었어요.”

박씨 부부는 그날 저녁 8시40분쯤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가 걱정돼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박씨 남편이 나가보니 지하주차장은 빠르게 잠기는 중이었다. 반지하 집 두 곳으로도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집에 있는 이웃을 ‘빨리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지하라고 다 같은 반지하 집이 아니었다. 지하주차장 옆에 붙은 전예성(52)씨의 반지하 집은 창문이 꽤 크고, 세 창문 가운데 한 창문에 방범용 창살이 달려 있지 않았다. 전씨와 박씨 남편 등이 딸들을 빼냈다.

홍씨 집은 전씨 집과는 달랐다. 땅바닥에 딱 붙은, 30㎝가량 되는 높이의 창문 4개 전체에 방범용 창살이 붙어 있었다. “밤 9시쯤이었던 거 같아요. 빗소리가 거세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상황이었어요. 남편이랑 이웃집 아저씨(전예성씨)가 창살을 아무리 뜯어내려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계단이 연결된 현관문 쪽은 이미 물에 잠겼고요.” 집 안에 있던 홍씨 가족은 수압 때문에 안에서 대문을 열 수 없었다.

애가 탄 이웃 주민들과 홍씨의 지인 등 여러 사람이 119에 신고했지만 이들 가족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다. 최초 119 신고 접수 시각은 저녁 8시49분. 당시 서울시 곳곳이 침수되면서 관악소방서 인력은 모두 출동한 상태였다. 그나마 가까운 양천소방서 구조대와 구로소방서 구급대가 밤 9시2분에 홍씨 집을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양천소방서 구조대는 도로에서 차량이 침수돼 현장에 도착할 수 없었다. 구로소방서 구급대는 퍼붓는 장대비를 뚫고 밤 9시46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급대에는 방범용 창살을 뗄 장비가 없었다. 결국 구조대가 도착한 밤 11시가 넘어서야 쇠창살을 뜯어내는 등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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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창문 너머로 침대와 옷장이 보인다.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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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9일 오전, 홍씨 가족이 살던 빌라 옆 건물에서 물을 퍼내던 60대 신아무개씨가 말했다. “이 동네가 다 원룸, 빌라 이런 다세대주택이잖아요. 그런데 반지하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에요. 저렇게 땅에 창문이 딱 붙은 식의 집이 있고, 건물 밑으로 조금이라도 시멘트 언덕을 만들거나 몇 계단을 만들어 바닥에서 올린 집이 있고. 저희 원룸 지하 세입자들도 초저녁에 원룸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고 연락 와서 다 대피했죠.”

관악구 신림동, 신사동 일대에 물난리가 났지만 홍씨 집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집이었다. 연락할 건물 관리자가 없었고, 창이 땅바닥에 딱 붙어 있었고, 창문 전체에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모, 아픈 언니, 어린 딸이 사는 집인데 방범용 창살이 다 붙어 있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위험한 집이 아니었겠느냐”며 “폭우를 걱정해 일상적인 위험을 감당할 순 없었을 것이다. 결론은 반지하에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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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10일 반지하 주택에서 집중호우로 고립돼 숨진 홍씨 가족 빈소가 서울 영등포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김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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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엄마, 장애 있는 언니, 어린 딸과 살 집


“들어오세요. 여기랑 집 구조가 똑같았을 거예요. 방 3개고, 여기보다 컸으면 컸지 작진 않았을 거예요.”

홍씨 가족과 같은 빌라 2층에 사는 김아무개(66)씨가 말했다. 그는 홍씨 가족과 교류하던 이웃이다. “그 집 할머니 딸이 면세점인가 괜찮은 직장에 다녀서 저한테 립스틱도 선물해주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아파서 돌아가시고, 장애 있는 언니는 낮에 도우미 같은 분이 돌보고. 직장 다닌다 해도, 가족들 다 책임지는데,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가고 이런 건 어렵지 않았을까요?” 사실상 가장이던 홍씨는 한 면세점에서 판매노동자로 일하다가, 2019년부터는 노조 상근자로 활동했다.

8월10일 서울 영등포구 한 병원의 장례식장, 홍씨 가족의 빈소에 설치된 텔레비전 화면에는 생전 홍씨 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흘러나왔다. 홍씨의 어린 딸아이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는 모습, 홍씨가 바다에서 양팔을 벌리며 웃는 모습, 다운증후군 언니가 집에서 양팔로 하트를 표현한 모습…. 홍씨 가족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단란하고 밝게 살고 있었다. 반지하 집은 이 가족에게 적은 돈으로도 여러 개의 방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집이었다. 형편이 어려운데 가족 구성원이 많다면, 반지하 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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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가구 거주 현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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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 집과 같은 골목에 있는 ㄴ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그 정도 반지하와 비슷한 집은 이 동네에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6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반)지하 주택은 32만7천여 가구에 이른다. 100가구에 1.6가구꼴로 지하 또는 반지하 주택에 사는 셈이다. 서울에만 20만800여 가구가 (반)지하 집에 산다. 2020년 3월 나온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반지하 주거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반)지하 가구 가운데 29.4%가 기초생활수급가구다. 장애인이 있는 가구도 15.5%다.

휠체어를 탄 딸을 둔 홍윤희 장애인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은 “(관악구 가족의 죽음을 보면서) 화나고 참담하다. 장애인 자녀가 태어나면 돌봄 인력이 필요해 전반적으로 가족의 소득수준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홍씨가) 경제적 부담을 저희한테 따로 얘기한 적은 없고 어머니가 나이가 있어 아프신 것 고민하고, 언니 항상 신경 쓰고. 본인보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본인은 (가족에게) 더 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어요.” 홍씨의 직장 동료였던 김수현씨는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고인을 추억했다.

“항상 손 잡아주는” 면세점 노조 활동가였던


홍씨 가족의 죽음 이후에 서울시는 곧바로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지하와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각 자치구가 건축허가 때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하고, 이미 허가된 (반)지하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줘 순차적으로 없애나가겠다는 계획이다. 2012년 침수 우려가 있는 지역의 지하층은 서울시 심의를 거쳐 주거용으로 건축을 불허할 수 있도록 건축법이 개정됐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반지하 주택 건축 자체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빈곤사회연대는 8월10일 성명을 내어 “두려운 건, 대책 없이 반지하마저 사라지면 (도심에서) 서민들이 살 곳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이라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침수 피해 지역을 방문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조했는데, 원 장관이 만들어야 할 근본 대책은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만 안전을 보장하는 개발 도시’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조차 평등한 안전과 주거권을 보장받는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1일 홍씨의 어머니가 살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모든 반지하 거주자가 공공임대주택으로 갈 수는 없다.

홍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반지하 집에 사는 줄은 전혀 몰랐다며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흐느꼈다. “싫다는 말을 못하고, 거절을 안 하는, 누가 부탁하면 항상 손 잡아주는 친구였다.”

홍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월급이 줄어드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조합 상근자로 활동했다. 김소연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은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임금 구조는 최저임금 수준 기본임금에 판매수당 등이 붙는 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임금이 평균 30만원 이상 저하됐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고, 휴업으로 그냥 구조조정당한 사람도 많았다”며 “(홍씨가 속한 노조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게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고 노력하고 살아왔는지 고인에게 묻고 싶다”며 울먹였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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