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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진화위, '장준하 의문사 조사' 미적…유가족 "이럴 거면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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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조사개시 이후 진척 無

국정원 등 자료 비협조 상황만 강조

'실지조사' 권한 행사에 미온적 태도

진화위 "강력 조사권한 결정은 의결사항"

타살 입증 감식 결과 채택도 하세월

조직 시스템, 조사 여건 부실 지적도

위원장 임기, 정권 교체 영향 불안정

유족·시민사회 "의지 있나" 분노 표출

노컷뉴스

지난 2012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묘소 이장 당시 장 선생의 유해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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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묘소 이장 당시 장 선생의 유해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2기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가 독립·민주화운동가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관련 진실규명에 나섰지만 조사 작업을 미적거리면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단서로 추정되는 사건 당일 행적 등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관계 기관의 협조만 바라보고 있을 뿐, 적극적으로 조사 권한조차 행사하지 않으면서 유가족들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1년째 제자리…조사권한 행사 소극적 '의지 있나'

16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진화위는 지난해 7월 22일 장준하 의문사에 대해 조사개시를 했지만 1년째 진실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 선생 사망 이후 1·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1기 진화위 등 국가 차원의 조사가 '진상규명 불능'으로 끝난 가운데, 네 번째 조사도 답보 상태인 것이다.

진화위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용의자로도 지목됐던 인물은 이미 사망한 데다 50년 가까이 경과된 사건이라, 서면 증거 등을 찾아야 하는데 자료입수가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사건에 깊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자료제공 비협조로 사건 당일 행적 등 추가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취지다.

과거 조사 때 국정원이 제공했던 2천쪽 분량의 자료 중 사망 당일 관련 자료가 누락돼, 자료 협조를 받지 못하면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노컷뉴스

지난해 8월 2기 진화위가 제15차 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진화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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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기 진화위가 제15차 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진화위 제공
하지만 진화위는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조사 대상 기관 등을 방문해 '실지조사(實地調査)'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의지만 있으면 기관 내부를 조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등이 여전히 "추가 자료는 없다"는 취지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개시 근거이기도 했던 '자료협조 약속'만 믿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증거를 찾을 권한 행사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그럼에도 진화위는 단일 사건으로는 위원회 의결을 얻기 어렵다는 이유로 권한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진화위 관계자는 "조사에 진전이 없는 건 인정하지만 유일한 증거인 문서들을 '없다'고만 할뿐 왜 없는지 이유도 소명하지 않는다"며 "군사안보사에는 직접 찾아가 자료검색은 해봤지만, 국정원 등에 실지조사까지 할지는 조사관 개인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감식 결과 공식화도 '밍기적', 전문성·연속성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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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유해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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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유해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신규 조사 작업이 더딘 것은 물론, 기존 민간에서 유골 감식 등을 통해 타살 정황을 밝혀낸 결과자료를 공식 증거로 채택하는 것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13년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장 선생 유골에 대한 첫 과학적 감식을 진행, 사인을 실족사가 아닌 외부 가격에 의한 '타살'로 규명해 검안보고서를 냈다.

이를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증거로 제출해 공신력을 확보하려고 했으나, 진화위는 정식 자료로 채택할지 여부 등을 여태 내부 검토만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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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사망 후 추모객들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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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사망 후 추모객들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이처럼 조사가 미흡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진화위 내부의 비효율적 조직체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진화위는 사건수 대비 부족한 인력과 업무 연관성 적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의 배치, 잦은 인력교체 등에 대한 지적을 받아 왔다. 실제 장 선생 의문사를 조사하는 전담 조사관도 단 한 명뿐으로, 동시에 10건 넘는 다른 사건까지 맡고 있다.

현재 조직 시스템으로는 장준하 의문사와 같이 전문적인 조사 노하우와 강한 의지,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요한 사건을 풀어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와 내부 관계자들의 견해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서 기존 진화위 운영 기조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미지수다.

1기 진화위 상임위원 출신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위원장, 조사관, 정부 방침 등 변수가 많은데 곧 위원장 임기도 종료되기 때문에 조사 업무가 원활하지 않게 될 우려가 크다"며 "주요 사건들을 안정적으로 조사하기 힘든 환경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시민사회 "역사 바로잡을 의지 있나"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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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경기도 포천 약사봉 일대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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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경기도 포천 약사봉 일대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가해자를 밝혀내 수십 년 된 고인의 억울함을 풀고, 유력한 배후로 의심받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사과받기를 기다려온 유가족들은 실망을 넘어 분통이 터지는 심정이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광복회장은 "예전 조사관들이 못 잡은 걸 잡아내야 하는데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며 "용두사미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이어 "근현대사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인데도 정치권에서는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정치인 목소리도 없다"며 "보상이나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다. 바른 역사를 세우고 불행한 일이 미래에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에 앞장선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역시 이번 의문사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데 대해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영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연대회의 사무처장은 "과거 위원회들에서 조사한 내용의 쟁점들을 뽑아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양상이다"라며 "민간 유골 감식 결과의 경우 공신력 확보가 매우 중요한데도 지금까지 후속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또한 "진화위 내부에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며 회피하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조사방향을 못 잡고 의지마저 부족해 보여 분노를 느낀다"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결정적 자료를 내놓기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조사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내부를 뒤져서라도 찾아내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민주화 탄압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밀도 높은 증거들이 이미 많은 만큼, 바른 역사정립을 위한 과거사 청산이라는 소임을 부여받은 법률 기관으로서 장준하 의문사 조사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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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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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앞서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으로 예정에 없던 산행을 하고 내려오다 벼랑으로 떨어져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타살임을 가리키는 시신·유골 감식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국정원이 유신개헌 서명운동을 추진하던 장 선생의 '모든 것'을 사찰한 문서들이 드러나면서,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다 국가권력에 살해됐다는 의혹이 짙어졌다.

다만, 국가 정보기관들이 제출한 장 선생 관련 자료에는 사망 당일 관련 자료만 빠져 있어 47주기를 하루 앞둔 이날까지 가해자와 배후를 공식적으로 단정 짓지 못해 의문사로 남아 있다.

그러다 2기 진화위 출범과 함께 국정원 등이 전향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2기 진화위 활동 기간은 오는 2024년까지이며, 한 차례 1년 연장이 가능해 길면 2025년까지 조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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