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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말라붙은 강… 中·유럽, 물이 없어 공장 못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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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프랑스 중서부 루아르(Loire) 지방의 소도시 시농(Chinon). 언덕 위 고성(古城)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비엔(Vienne)강과 석조 다리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6일(현지 시각) 이곳을 찾았을 때 사진 속 절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리 동쪽 강은 완전히 말라붙어 온통 누런 모랫바닥이 드러났다. 서쪽 편엔 강이 거대한 물웅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조선일보

관광명소인 시농의 다리, 강물과 함께 관광객도 끊겼다 - 지난 16일(현지 시각) 프랑스 중서부 루아르 지방 소도시 시농을 가로지르는 비엔강이 극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 모랫바닥을 드러냈다(위 사진). 교각에는 어른 키 두 배 높이까지 물이 흐른 흔적이 선명했다. 이곳은 언덕 위 고성을 배경으로 유유히 강물이 흐르는 풍경(아래 사진)으로 이름난 관광 명소였지만, 최근 물길이 끊기면서 관광객 발길도 끊겼다. /정철환 특파원·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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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에는 수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있었다. 손으로 모래흙을 파봤지만, 물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교각 곁에 서 보니 강바닥에서 약 3.5m, 어른 키 두 배 되는 곳까지 강물이 흘렀던 자국이 선명했다.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콜레트(58)씨는 “강물이 끊기며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며 “내 평생 이렇게 심한 가뭄은 처음”이라고 했다.

시농의 말라붙은 강바닥은 올여름 전 세계를 휩쓴 가뭄 피해의 일각에 불과하다. 독일은 라인강 수위가 급격히 내려가 수운(水運) 중단 위기에 처했고, 프랑스 중·남부에선 심각한 물 부족으로 관광과 농업, 전력 생산까지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에서는 창장(長江)강 유역을 비롯한 중남부에 60여 년 만의 폭염과 가뭄이 닥치면서 물과 전력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약 78만명이 식수난을 겪고, 농작물과 가축으로 피해가 번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공 강우에 이어, 16일 중국 최대 댐 싼샤댐 수문을 열고 물 5억t(팔당댐 저수량 2배)을 방류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산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Corona)에 이어 기후변화(Climate Change)에 따른 가뭄까지 이른바 ‘CCC’ 리스크가 산업계를 덮쳤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공업용수를 많이 소비하는 화학과 반도체 등 필수 소재 산업이 피해를 보면서, 이 산업들이 몰려 있는 특정 국가의 기후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프랑스와 영국(잉글랜드)에 내린 비의 양은 각각 9.7㎜, 23.1㎜로 예년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비엔강뿐만 아니라 루아르강과 가론(Garonne)강 등 중부와 남부의 주요 하천이 바닥을 드러내자 이 지역 대부분에서 물 사용 제한 조치를, 일부 지역에선 수돗물 제한 급수까지 하고 있다. 시농의 신문 가판대에는 “비엔강과 루아르강 수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는 기사를 1면에 크게 실은 지역신문들이 보였다.

가뭄의 영향은 산업 곳곳에 미치고 있다. 시농 북서쪽 8km 지점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로 쓸 강물이 충분치 못해 전력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물 좋기로 유명한 남부 엑상프로방스 인근 베르동 계곡에선 수영과 카누 타기 등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남동부 토르시외(Torcieu)에서는 15㎞에 달하는 하천 상류가 말라붙으면서, 어부들이 고립된 물고기를 건져내 하류로 옮기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와인 생산에도 타격이 우려된다. 루아르는 보르도와 부르고뉴, 론강 일대와 함께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다. 포도 농사를 짓는 필리페(49)씨는 “너무 가물어 땅속 깊은 곳까지 수분이 증발해버렸다”며 “포도나무가 말라 죽을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일간 르피가로는 “보르도에선 포도나무 고사(枯死)를 막으려 5월 이후 가을 수확까지 (포도 품질을 위해) 물을 주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와인생산자협회에선 “2022년산 와인에 대한 평가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화학 기업 바스프(BASF) 등 화학 공장들이 밀집한 독일 라인강 유역에선 공업용수 부족으로 공장 가동률이 40~50% 수준까지 내려갔다. 특히 라인강 수위가 바지선 운항에 필요한 최소 수위보다 40㎝가량 낮아져 유럽 물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라인강은 서유럽 내륙 수상 운송의 80%, 독일 내 에너지(천연가스·석탄·원유) 운송의 30%를 담당한다.

중국도 가뭄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가뭄으로 수력발전이 영향을 받자 쓰촨성은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에 생산 중단을 지시했다. 현대자동차 중국 법인은 지난 16일 쓰촨성 전력국에서 “20일까지 전력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쓰촨 공장 조업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 도요타·폭스콘 등의 공장도 가동을 중단했다. 농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쓰촨, 충칭, 후베이, 장시, 안후이 등 창장강 일대 6곳에서 지금까지 서울 면적의 11배에 해당하는 농경지(6500㎢)가 가뭄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16일부터 프랑스와 독일 서부, 이탈리아 북서부 등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국 기상청은 오히려 더 긴장하고 있다. 제롬 르쿠 프랑스 기상청 예보관은 “극심한 가뭄으로 표토가 단단하게 말라붙으면서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해 많지 않은 비에도 쉽게 수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파리에는 1시간 동안 약 40㎜ 내린 비 때문에 센강 근처 주요 도로에 물이 차오르면서 차량 수백 대가 침수 피해를 봤다. 또 지하철 9호선 알마마르소역이 물에 잠겨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한파 등이 글로벌 경제의 고정 리스크가 됐다”고 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해 대만에서 발생한 56년 만의 가뭄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 등의 반도체 생산량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2월 미국 텍사스에선 30년 만의 한파와 폭설로 정전 사태가 발생, 삼성전자·인피니언·NXP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공장들이 줄줄이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전 세계 완성차업계를 마비시킨 반도체 공급난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한편 독일 화학 산업과 중국 쓰촨의 애플 위탁 생산 공장들이 타격을 입으며 한국 화학업계와 전자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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