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또 뚫린 사회안전망…‘수원 세 모녀’ 비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암·난치병에 ‘생활고’ 월세 제때 못 내…자택서 숨진 채 발견

전입신고 안 해 기초수급 등 도움 못 받아…“매뉴얼 보강을”

경향신문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가 마련된 24일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이 조화를 올려놓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단란한 가족이었는데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갔는지 참 안타까워.”

경기 화성시의 한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22일 A씨(60대) 등 세 모녀가 전날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 사건을 전해 듣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현 거주지인 수원으로 오기 전 화성에서 17년간 살았다고 한다.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 권선동 한 다세대주택에서는 A씨와 그의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건강 악화와 생활고를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 가족은 원래 5인 가구였지만, 수년 전 A씨의 남편과 아들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은 세 모녀는 2020년 화성을 떠나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주민들은 A씨 가족이 사업 실패로 빚 독촉에 시달리다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이사를 한 뒤에도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A씨는 암 진단 후 치료를 받았다.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병원비 문제로 보증금 300만원에 40여만원인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는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가족은 수원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살았다. 빚 독촉을 피해 다니느라 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등록상 주소는 화성 지인의 집으로 등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그 집(A씨 가족)이 하도 어렵다고, 제발 주소 등록 좀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우리집에 사는 것으로 해줬다”면서 “사정이 너무 딱해 도와줬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은 외부에 집안 형편 등을 알리지 않은 채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대부분 아는 사이인데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A씨 가족이 ‘유령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이 행정기관은 이들의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고 비극을 피할 기회를 놓쳤다.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A씨 등이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관련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공과금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 가구’를 정하고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A씨 역시 상당 기간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현장 조사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실거주지가 달라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서류상 주소지인 화성시는 A씨 가족이 16개월분의 건강보험료 27만원을 체납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3일 관계자가 현장(B씨의 집)을 방문했다. 이 관계자는 “살고 있는 분이 연락처도 모른다고 말씀하셔서 형편 등을 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전입신고가 되지 않아 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겪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시에는 아무런 행정 기록이 없다”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원했을 텐데 이번에 사고가 난 뒤 파악됐다”고 이날 밝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원 세 모녀의 사건이 알려진 대로) 주소지와 거주지가 달라 발굴이 어려웠다면, 담당 공무원이 어디까지 그 사람들을 찾아나설 수 있는지 분명한 기준을 담는 등 매뉴얼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이 보강되더라도 실효성이 있으려면 이를 실행할 사회복지 담당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