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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 신화 쓴 한국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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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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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2008년 여름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는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펼쳐졌는데요.

오늘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야구 국가대표가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해 제정된 '야구의 날'입니다.

◇ 어땠길래 온 국민이 흥분했지?

베이징올림픽 결승전 상대는 아마추어야구 세계 최강인 쿠바였는데요.

앞서 치른 여덟 번의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한 우리 대표팀은 이날 류현진을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드라마는 이승엽의 선제 투런포와 이용규의 적시타로 3-2로 앞선 상황에서 맞은 9회말에 펼쳐졌죠.

류현진은 심판의 어이없는 볼 판정으로 1사 만루 위기를 맞았고, 급기야 포수 강민호는 주심과의 의사소통 실수로 퇴장을 당했죠. 강민호는 분노를 참지 못해 포스 마스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미트를 더그아웃 벽에 레이저를 쏘듯 던졌죠.

절체절명 위기에서 마운드와 안방을 동시에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국내 최고 싱커볼 투수 정대현과 햄스트링을 다친 진갑용이었습니다.

안타 하나면 역전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정대현과 진갑용은 쿠바의 강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병살타로 요리하며 경기에 마침표를 찍고 한국 야구사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이정표를 남겼죠.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를 기념해 이날을 '야구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 한국 야구의 기원은 언제일까?

한국에 야구를 처음 보급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인데요.

1901년 YMCA 초대 총무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온 그는 한국민과 친해지기 위해 다양한 스포츠를 국내에 선보였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이 야구였습니다.

질레트는 YMCA가 서울 인사동 태화관을 임시회관으로 사용하던 1904년 미군 병사들의 캐치볼에 한국 청년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자 야구를 선교에 활용하기로 했죠.

그 후 미국에 주문한 야구용품이 도착하자 황성기독교청년회원을 중심으로 야구 규칙과 기본 기술을 가르쳐 본격적으로 야구가 뿌리를 내렸죠.

◇ 한국프로야구는 언제 시작된 거야?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3월 27일 6개 구단으로 출범했는데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정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야구, 축구, 씨름 등 각종 스포츠의 프로화를 추진하며 시작됐죠.

이날 MBC 청룡(서울), 삼미 슈퍼스타즈(경기·강원), OB 베어스(충청), 해태 타이거즈(전라), 삼성 라이온즈(경북), 롯데 자이언츠(경남) 등 각 구단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서울운동장에 모여 한국프로야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당시 전체 프로야구 선수는 141명에 불과했는데요. 해태가 가장 적은 21명, 가장 많은 MBC와 삼미는 26명이었죠. 지난 2월 기준 KBO 등록 선수는 606명입니다.

당시 팀당 경기 수는 현재 144경기에 비해 훨씬 적은 80경기였습니다.

◇ 야구의 날엔 어떤 일 펼쳐질까?

야구의 날에는 경기 무료 관람, 경품 제공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데요.

최근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별다른 행사가 진행되지 못하다가 올해 다시 열리게 됐죠.

오늘은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 신화를 쓴 김경문 당시 대표팀 감독과 포수 진갑용(현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이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KIA-키움 히어로즈전에서 당시 영광의 순간을 되새기기 위해 시구와 시포를 한다고 해요.

오랜 시간 야구대표팀 사령탑으로 활약한 김인식 전 감독과 김경문 전 감독에게는 공로패도 주어집니다.

임동근 기자 장진아 인턴기자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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