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서 1년간 소재지 확인 안 되면 '거주불명자' 등록
복지 사각지대·범죄 노출 우려…"적극적 발굴 시스템 필요"
세 모녀 집 근처에 붙어있던 도시가스 점검 방문 안내문 |
세 모녀는 거처를 옮긴 뒤 해당 지자체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지자체는 이들의 생활고는 고사하고 거주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들처럼 거주지는 물론 생사까지 파악되지 않아 '거주불명자'로 등록된 국민이 전국적으로 24만 명이 넘는다.
이로 인해 '수원 세 모녀'의 비극은 언제 어디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수원시와 화성시에 따르면 수원 세 모녀는 60대 여성 A씨와 40대 두 딸로 지난 21일 오후 2시 50분께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A씨 등은 모두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유서에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고 적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긴급생계지원비나 의료비 지원 혜택,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
10여 년 전부터 화성시에 있는 지인 집에 주소 등록을 해 놓은 상태에서 2020년 2월 수원의 현 주거지로 이사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화성시와 수원시 모두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는 2개월마다 건강보험 체납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방문 조사 등을 통해 복지 대상자를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재차 소재지 파악에 나선다. 이때도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가 불분명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시청이나 주민센터 홈페이지에 공고한다.
이후 1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주민등록지가 주민센터로 바뀌고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다.
숨진 '수원 세 모녀'가 살던 다세대 주택 현관문 |
거주불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4만4천575명이다. 거주지가 5년 이상 불분명한 장기 거주불명자만 15만명에 이른다.
A씨 가족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16개월째 체납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통보받은 화성시의 공무원이 A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방문,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화성시 공무원이 A씨 가족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이로 인해 A씨 가족은 거주불명자 등록 직전의 건강보험 '비대상자'로 분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불명자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데 더해 범죄에도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충북 청주에서 '축사 노예'로 혹사당하다 19년 만인 2016년 세상에 드러나 충격을 준 일명 '만득이 사건'의 피해자 고모(당시 47) 씨도 A씨 가족처럼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그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던 사실은 장기간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는 기존 방법으로는 거주불명자의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한 지자체 복지 업무 담당 공무원은 "수사권도 없고, 요즘은 개인정보 노출 우려 때문에 다른 기관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어려워 지자체에서 거주불명자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에 행안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장기 거주불명자에 대한 사실조사를 벌였다.
건강보험료 납부 여부, 기초생활수급 여부 등 20여 종의 행정 서비스 이용 실적을 확인하고 실적이 없는 경우 지자체에 통보해 지자체가 가족관계 등록사항, 출국 여부 등에 대한 추가 조사로 거주 사실을 확인하거나 거주불명 등록 유지 또는 직권말소 등의 조치를 했다.
복지 사각지대(PG) |
그러나 A씨 세 모녀가 현재 비대상자 단계에서 나아가 거주불명자를 거쳐 장기거주불명자로 등록된다고 하더라도 행안부의 사실조사 절차대로라면 수원시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확인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A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비롯한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씨 가족 같은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 기존 복지제도의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나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거주불명자 등 위험에 노출된 주민을 찾아내고, 지역 사회에서도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 복지제도의 중요한 원칙은 신청주의와 거주지 중심인데 이런 관점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게 이번 수원 세 모녀 사례"라며 "지금은 공무원이 대상자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으면 비대상자로 분류하는 게 전부인데 이를 끝까지 추적하도록 매뉴얼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역단체 단위에 일종의 사회적 탐정 같은 공무원 팀을 도입하고 이 팀이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가 사라졌을 경우 추적 업무를 전담하고 현재 학대 피해자를 찾는 것처럼 경찰과 공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복지제도는 급여 수준을 높이는 등 복지의 질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는데 전달체계가 세심하게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공무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집주인이나 배달부, 이웃 등이 이상징후가 보일 경우 신고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외국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피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지도 적극적으로 접근해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며 "지역사회에서 복지가 필요한 분들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 교육하고 복지 대상자를 발굴하는 데 나서도록 지원하는 민관합동 시스템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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