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수원 세모녀’ 발인식에서 수원시 관계자들이 세 모녀의 위패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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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가 26일 영면에 들었다. 위기신호를 보냈지만 국가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은 이들은 마지막 길을 떠나며 ‘복지사각지대 해소’라는 숙제를 남겼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60대)와 40대 두 딸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발인식에는 친척이나 지인들 대신 수원시 공무원 10여명이 참석해 세 모녀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연고자의 시신 인수 거부로 세 모녀의 장례식은 공영 장례로 치러졌다.
장례지도사와 공무원들은 오전 11시28분쯤 마지막으로 헌화한 뒤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묵념을 마친 이들은 세 모녀의 위패를 하나씩 들고 굳은 표정으로 빈소를 나섰다. 세 모녀의 관도 공무원들의 손을 거쳐 차례로 운구차 3대에 나뉘어 옮겨졌다.
발인식을 지켜보던 몇몇 시민들은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거 같아 씁쓸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오전 11시40분쯤 장례식장을 떠난 운구차는 12시50분쯤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했다. 세 모녀의 관은 각각 4~6번 화로로 들어간 뒤 화장됐다. 참석한 지인이나 가족이 없다 보니 울음을 터뜨리며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 모녀의 유골은 연화장 내 봉안담에 임시 봉안됐다. 수년 전 난치병을 앓다 세상을 먼저 떠난 A씨의 아들은 현재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에 안치돼있다. 수원시는 화성시와 협의해 A씨 가족을 함께 안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사각지대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지만 허점은 여전했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기 위해 단전·단수·건강보험료 체납 등 34가지 위기 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하는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수원 세 모녀는 16개월간 건강보험료 27만원을 체납했음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시스템이 등록 주소지에 의존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소지는 화성시에 두고, 실제로는 수원시에 거주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원 세 모녀처럼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는 ‘거주불명자’는 지난해 기준 24만명에 달한다. 이 중 거주지가 5년 이상 불분명한 장기 거주불명자만 15만명에 이른다.
신청주의 복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 모녀가 만약 어려움을 행정기관에 알렸더라면 생계 급여와 의료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이들이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관련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청을 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복지 서비스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면서 “위기 가구 발굴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국민이 신청하기 전에 먼저 복지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손봐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함께 위기가구 발굴에 나서기로 했다. 또 위기가구를 선별하는 ‘위기정보’를 현재 34종에서 39종으로 늘려 대상을 확대한다.
경기도는 위기 상황에 놓인 도민이 도지사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위기이웃 발굴단을 구축해 위기가구를 발굴하기로 했다. 세 모녀의 등록 주소지였던 화성시에서는 ‘고위험가구 집중발굴 TF’가 꾸려졌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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