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누구나 아프면 ‘명의’를 찾는다. 위중할수록 그런 경향은 짙어진다. 하지만 좋은 환자 이전엔 명의도 존재하기 어렵다. 내가 만난 의사를 좋은 의사로 만들 수 있는 것도 결국 환자 본인이다. 정확한 진단에 꼭 필요한 단서를 더함과 덜함 없이 제공하는 것은 환자의 능력이자 갖춰야 할 소양이다. 물론 의사의 처방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단, 그 이전에 정확한 진단부터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문진(問診)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각종 검사의 필요 유무에서부터 진단 방향, 적정 진료과 결정까지 결국 문진에서 결정된다. 말하지 않으면 의사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환자가 진료 시 의사에게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환자가 하는 말의 무게는 상당하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진단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규모가 작거나 검사 장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의료기관일수록 환자 말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
말 한마디에 진단 방향 바뀔 수도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전북대 연구팀은 29쌍의 건강상담 사례를 의대 본과 3년생(76명)에게 들려주고 진단명을 기재하도록 했다. 똑같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두 사례 중 A사례에 기립성 저혈압으로 진단한 응답이 14.5%였던 반면, B사례는 2.6%뿐이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환자의 증상 표현 중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이라는 문구의 유무였다. A사례에는 이 문구가 있었고 B사례에는 없었다. 연구팀은 “환자의 언어가 진단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난 결과”라며 “진단에서 환자의 언어 행위의 중요성은 크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의사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양에 따라 오진율은 물론이고 쓸데없는 검사, 과잉진료까지 줄어든다.
치료 부작용의 사전 예방 차원에서도 환자의 충분한 설명은 중요하다. 특히 약물 상호 작용으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데 환자의 역할은 크다. 실제로 심부전 환자가 특정 당뇨약 복용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심부전이 악화할 수 있고, 부정맥으로 와파린을 복용하는 사실을 의사가 모르면 수술 시 출혈이 멎지 않을 수 있다. 또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노인 환자가 부종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이뇨제 처방을 받으면 두 약의 상호 작용으로 기립성 저혈압과 이로 인한 낙상·골절, 심하면 사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실제로 낙상은 노인의 사망 원인인 2위다. 그만큼 환자를 지킬 수 있는 것 역시 환자 본인이다.
따라서 진료 시 환자는 의사에게 잘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 허용되는 진료시간은 많지 않다. ‘요점은 간단히, 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말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우선 병원에서 가장 먼저 말하게 되는 것은 증상이다. 증상은 가급적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어디가 아프다’로 끝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똑같은 두통, 어지럼증, 속쓰림·소화불량, 결림도 경증부터 중증까지 수십·수백 가지 진단명이 나올 수 있는 증상들이다.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고, 어느 정도로, 얼마나 자주 혹은 지속하는지 표현한다. 또 비슷한 증상이라도 과거에 경험한 증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특이점을 말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의사는 수많은 진단명에서 하나씩 배제하고 정확한 진단명에 접근한다.
━
몸무게 등 신체 변화도 주요 정보
둘째, 복용·투약하고 있는 약이나 이와 관련된 부작용 경험을 전달한다. 치료 시 부작용을 예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약물 알레르기 반응은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요소다. 최근에 투약하는 약의 종류가 바뀌었다면 이 역시 알린다. 한약, 건강기능식품, 민간요법도 포함된다. 셋째, 병력과 가족력, 여행력을 공유한다. 병의 재발이나 특정 질병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주요 단서가 된다. 특히 여행력은 풍토병·유행병 진단에서 중요하다.
넷째, 최근의 신체적 변화 사실을 알린다. 이 중 갑작스러운 몸무게 변화는 심각한 질환의 대표적인 전조 증상이다. 혈당이나 혈압, 수면 패턴 등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수치나 인지하는 부분 역시 그 변화 여부를 알 수 있다면 현재 질환을 파악하는 데 도움된다. 다섯째, 직업이나 평소 업무 환경도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신체 변화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평소 환자가 노출되는 위험 요소와 이로 인한 질환을 의심하는 데 필요하다. 질환의 상당 부분은 장기간 누적된 것들이 결국 문제가 된다.
류장훈 기자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